복거일이 소설로 재구성한 이승만…'물로 씌어진 이름'

1부 '광복' 편 전 5권 출간…이승만의 공 집중조명
"그래서 사람들은 이승만 이름 석 자를 물로 썼다. 그리고 그의 작은 허물들을 청동에 새겼다.

"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77)이 최근 출간한 전기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전 5권)은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의 생애, 그중에서도 그의 공(功)과 업적을 집중적으로 다룬 대하 장편소설이다.

제목 '물로 씌어진 이름'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말 "사람들의 나쁜 행태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

"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책의 맨 앞머리에서 작가가 "우남의 업적을 밝히는 데 공을 들였다"고 공언한 대로 이 소설은 이승만의 공과 중에서 공(功)과 덕행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번에 나온 제1부 '광복' 편은 전 5권에 본문만 2천5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1941년 12월 7일부터 한국전쟁의 휴전이 이뤄진 1953년까지를 주로 다뤘다.

책에서 그려진 이승만은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사라진 조국의 부활을 위해 헌신하고, 공산주의에 현혹되지 않고 일관되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인물이다. 책 맨 앞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그의 생애를 요약했다.

"국제질서에 맵시 있게 적응하면서 사라진 조국의 부활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동했고, 언젠가는 부활할 조국의 청사진을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그렸다.

그 과정이 현란하면서도 자연스러워서, 애벌레가 고치 속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건너뛰고 문득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듯하다.

"
책은 소설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소설의 전통적인 서사 방식과는 좀 다른 접근방식을 택했다.

작가가 보기에 난세의 영웅에 가까운 이승만이라는 인간 자체보다는, 그 시대가 얼마나 엄혹한 시대였는지, 이승만이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시대적 상황은 무엇이었는지를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책에선 히틀러의 등장과 집권, 스페인 내전,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 추진, 진주만 공습, 미드웨이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세계사의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펼쳐지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2차 세계대전사, 또는 냉전 전사(前史)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만큼 이승만이 주로 활동했던 당시의 한반도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시간과 지역 안에, 그리고 열강들의 각축장 한복판에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줄곧 이승만의 공을 상찬하고 있지만, 과(過)에 대한 언급도 없진 않다.

대표적인 것이 1954년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없앤 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은 당시 이승만이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권력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중략) 그러나 세 번째 임기에 대한 욕심을 내면서, 이승만은 자신이 주도해서 세운 대한민국의 기초를 허물기 시작했다.

그 규칙을 허문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4권 343~344쪽)
다소 황당무계해 보이는 주장들도 보인다.

가령, 작가는 2차대전의 영웅이자 후에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 내각에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낸 조지 C. 마셜이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대해서도 '소련의 첩자'라는 식의 의혹을 제기한다.

따라서 이 책의 이야기들을 사실로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작가의 뚜렷한 반공·우파적 세계관에 따라 소설로 재구성된 이야기임을 염두에 두고 다른 역사서나 이승만 관련 연구를 참고해가며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작가는 2014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2016년 1월부터 '월간중앙'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랜 투병생활을 이어온 작가는 각고의 노력으로 1부 '광복' 편을 책으로 묶어 펴낸 지금도 2부 '건국' 편의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고령인 작가의 건강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번에 1부를 펴냈고, 2부 연재가 진행 중이지만 완간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백년동안. 전 5권. 각권 502~57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