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실험' 분석에 AI 접목…KAIST 창업팀이 그리는 미래 [긱스]

김대건 액트노바 대표
신약을 개발할 때 인간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실험용 쥐 같은 동물에 먼저 투여해본 뒤 효능과 부작용을 알아보는 '동물 실험'은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특히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양 등의 증상을 볼 수 없고,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기에 동물 실험 단계부터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는데요. 이런 과정에 '기술'을 적용시켜 자동화한 회사가 있습니다. 뇌과학 분야 권위자 김대수 KAIST 교수팀이 창업한 액트노바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김대수 교수(왼쪽)와 김대건 대표
"실험동물의 일생은 보고서의 '점' 하나로 치환됩니다. 그 희생에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가 담기도록 노력해야 하죠."한경 긱스(Geeks)와 만난 김대건 액트노바 대표는 '최고의 분석, 최소의 희생'이라는 슬로건을 회사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이 회사는 신약 후보물질의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분석 과정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자동화·효율화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전임상시험은 신약 후보물질을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실험용 쥐 같은 동물에게 먼저 사용해 부작용과 효과를 알아보는 단계다.

2018년 문을 연 액트노바는 뇌과학 분야 권위자인 김대수 KAIST 교수팀이 주축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시드(초기) 단계에서 카카오벤처스의 투자를 받았고, 최근 프리 시리즈A 라운드를 열었다. 복수의 벤처캐피털(VC)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100억원대 이상의 투자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CES 혁신상 받은 기술... 동물 실험 분석 '자동화'


회사가 주목한 건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이던 전임상시험 시장이다. 그간 전임상시험을 진행한 뒤 결과를 분석하는 작업은 '아날로그'적으로 이뤄져 왔다. 특히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은 약효를 분석하기가 더 어려웠다. 예를 들어 발작 같은 증상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탓에 수의사 등 연구 인력이 하루 종일 쥐의 영상을 찍으며 지켜봐야 했다. 또 쥐가 고통을 느끼는 정도를 쥐의 표정을 보고 육안으로 분석하는 등 정확도도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동물 행동 실험에서 자주 불거지는 건 윤리 문제다. 매년 전 세계에서 6억마리 이상의 실험 동물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험 동물을 줄이고(Reduction), 처우를 개선하며(Refinement), 최대한 동물을 대체할 다른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는(Replacement) '3R 원칙'이 있지만 여전히 동물 실험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회사가 개발한 건 동물 행동 실험을 AI 기술을 통해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다. AI가 촬영된 쥐의 영상을 골격 단위로 분석한다. 영상 속 쥐의 뼈 마디 마디나 코 끝, 머리 중심 등에 점을 찍어 좌표 데이터를 검출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CT 촬영으로는 분석하기 힘든 이상 행동을 찾아낼 수 있다. 김 대표는 "예를 들어 파킨슨병에 걸린 쥐는 한쪽 뇌가 마비되면 한 방향으로 계속 빙글빙글 도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기존 방식은 단순히 몇 바퀴를 도는지 정도를 분석하는 게 전부였다"며 "딥러닝을 통해 골격 데이터를 추출하면 조금 더 정밀한 고차원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이를 통해 실험에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줄일 수 있을 거란 예상이다. 적은 실험체만으로도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또 소요 인력을 줄여 비용 효율화도 이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분석 비용과 시간 모두 80% 이상 줄였다"며 "향후 10마리의 쥐가 필요했던 실험이 3마리만으로 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 소프트웨어를 SaaS 형태로 만들어 기업·기관 등에 납품한다. 이 기술로 2022년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한미약품, 녹십자, 식약처 같은 국내 기업과 기관에 더해 미국 MIT, UCSD 같은 해외 고객사도 확보했다. 김 대표는 "보수적이고 오래된 기존 해외 대형 업체들에 비해 스타트업으로서 신기술을 빠르게 시도하고 적용해보고 부족함을 수정해나가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뇌를 사랑한 과학자와 춤을 사랑한 공대생

김 대표는 KAIST에서 학부는 전자공학, 박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원래 꿈은 로봇공학자였다. 로봇 물고기를 연구했지만, 2010년대 중반 당시 로봇 물고기의 한계점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어느날 물고기를 직접 조종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려면 생물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해야 했다. 그러다 뇌과학 분야 권위자인 김대수 교수를 만났다. 김대건 대표와 김대수 교수, 두 사람의 인연은 그 때 처음 시작됐다.

김 대표는 김대수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당시 막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AI 열풍이 불고 있었다. 머신러닝을 생명과학에 적용해보자는 꿈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연구원들이 실험용 쥐들을 말 그대로 '눈 빠지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영상을 한 프레임씩 돌려가며 몇초부터 몇초까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일일이 찾고 있었다. 이걸 자동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액트노바가 만든 소프트웨어의 프로토 타입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김 대표의 은인과도 같은 김대수 교수는 '뇌를 사랑한 과학자'라는 별명이 붙는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강아지부터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까지 다양한 동물을 키웠다. 포항공대 재학 시절엔 대학원생으로는 최초로 쥐의 뇌전증을 다룬 논문을 네이처지에 투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뇌'와 사랑에 빠졌다. 최근엔 근긴장이상증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최근 이 병을 앓던 1970~1980년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주앙 카를로스 마틴스의 카네기홀 공연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마틴스는 김 교수의 이름을 직접 호명해 격려했다. 지난해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뇌과학자로 출연했다. 뇌과학 분야에선 명망이 손꼽히는 인물이다.

김 교수가 뇌와 사랑에 빠졌다면, 김대건 대표는 '춤'을 사랑한 공대생이었다. 김 대표는 학부생 시절부터 쭉 힙합 댄스 동아리에 몸담았다. 학업을 포기하고 연습실에서 밤을 샌 적도 많았다. 발에 땀이 나게 공연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스우파' 같은 춤 프로그램은 '최애' 중 하나다. 그는 춤에서도 사업 아이템과 관련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공연을 위해 춤 영상을 보며 동작 하나 하나를 분석했던 경험 덕분이다.

"춤은 댄서의 생각과 마음을 언어 대신 몸짓으로 외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 알기 위해서는 각 장르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여야만 '배틀'에서 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죠. 쥐의 행동 증상도 그들이 말은 못하지만 어디가 아픈지를 외부로 전달하는 단서예요. 그렇기에 관측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걸 자동화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있는 거죠."

의료 AI계의 토스 꿈꾼다

사실 창업 초기엔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처음엔 프로토 타입을 갖고 주변 연구실에 제품을 공급하는 정도로만 사업을 이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기관들도 관심을 보이자 마음을 바꿨다. 창업 4년차에 시드 투자를 받은 이유다. 최근 연 프리A 라운드는 회사의 꿈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회사는 향후 CRO(임상시험기관) 사업으로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단순히 솔루션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직접 임상시험을 대행해주는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목표다. 김 대표는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뇌질환 발병률이 높아지고, 뇌질환 치료제(CNS) 분야 시장 규모는 2028년엔 26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며 "또 전체 수요에 비해 CRO 시장에서 동물 실험 분석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4% 남짓에 그치고 있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앞으로 의료 AI업계의 '토스'가 되는 게 목표다. 누구나 직관적이고 쉽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언뜻 무거운 의료 분야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김 대표는 "오랜 기간 동안 한 분야를 파고들고 있는 우리 팀원들의 '장인 정신'과 스타트업 특유의 '애자일' 정신을 합해 토스처럼 가벼우면서도 혁신을 이뤄낸 서비스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