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m 화폭에 담긴 조선시대 한강·임진강의 전경을 쫓다 [책마을]

한강, 그리고 임진강

이태호 지음
디자인밈
296쪽|2만5000원
신륵사 전경과 황포돗배 나루 /사진=이태호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이란 그림이 있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활동한 문인화가 지우재 정수영(1734~1831)이 그렸다. 폭이 16m에 이르는 대작이다. 1796년 봄, 종이 28장을 이어 붙여 만든 두루마기와 화구를 품에 안고 사생 유람을 떠난 정수영은 한강, 남한강, 한탄강, 임진강, 북한산, 관악산 등 2년 여간 명승을 두루 다니며 이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한강, 그리고 임진강>을 쓴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정수영은 정조 임금 시절 벼슬살이를 전혀 하지 않은 선비로,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처럼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고 유명 작가도 아니지만 모자란 그림 실력에 개의치 않고 천리 여행길의 흥취를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에 꽂힌 것’도 정수영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1980년 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로 일하던 시절 정수영의 사생화첩 한임강명승도권과 ‘해산첩’을 접하며 그 어늘하고 미숙한 화법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전시 자문을 맡은 것을 계기로, 3년여 간 정수영의 자취를 따라 한임강명승도권에 나온 이곳저곳을 답사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책은 정수영의 여정대로 명소를 소개하지 않고, 저자가 답사한 순서로 꾸몄다. 한임강명승도권의 중심인 신륵사와 여주지역을 시작으로 정수영의 여정을 좇아 한탄강, 관악산, 도봉산, 임진강 일대를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도권의 출발 부분인 한강 지역으로 되돌아온다. 정감 넘치는 필치와 생생한 실경 스케치로 완성해낸 그의 답사스케치는 와유산수(臥遊山水)의 시간을 선사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