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AI가 연주하는 신약 개발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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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각국의 방역 조치와 백신, 치료제 공급 노력으로 끝이 나고, 이젠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감염 대유행 초기에 AI를 활용해 감염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를 먼저 찾아냈다. 그 결과 4개월 만에 4만6000명의 환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과거 10년 이상 걸리던 백신 개발 기간을 10개월로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미국 정부의 신속하고 파격적인 예산 지원과 함께 AI는 코로나19 백신 초고속 개발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신약 개발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로 불린다. 방대한 후보물질 중에서 효과가 있는 극소수의 특정 물질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기간과 1조원 안팎의 비용이 들지만, AI는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성공률을 높여주는 혁신적 성과를 내준다. AI는 마치 바늘을 찾는 과정에서 성능이 탁월한 금속탐지기를 가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AI를 신약 개발에 접목해 치열한 선점 경쟁을 펼치는 이유다.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도 AI를 활용하면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우리 기업의 신약 개발 도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K-멜로디(MELLODDY)’ 사업이다. 신약 개발에 멜로디라니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다. 멜로디는 ‘AI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프로젝트’의 영문 약자다. 여러 기업과 기관 등이 보유한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AI의 연합학습 모델을 활용,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대폭 높이는 사업이다.
유럽은 지난해까지 ‘EU-멜로디’ 사업을 진행해 1000만 개 이상의 화합물을 대상으로 연합학습 프로젝트를 운영했고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K-멜로디 사업은 내년부터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으로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최근 국내 29개 AI 신약 개발 기업 대표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전문가들은 K-멜로디가 AI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공통 의견을 내놨다.
우리나라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의 하나는 기술 혁신이다. 우수한 인적 자원에 기반한 AI 신약 개발로 산업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면 경제성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다. 우리 산업계가 K-멜로디 사업이 신약 개발의 혁신적인 전환점이 되도록 힘을 모으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