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조용한 럭셔리'…한여름 캐시미어 열풍

은근히 富 드러내는 패션 트렌드 부상
로고·심벌 숨기고 고급 소재 차별화

美브랜드 '빈스' 매출 30% 늘어
브루넬로 쿠치넬리
루이비통의 ‘LV’, 구찌의 ‘GG’, 프라다의 ‘PRADA’ 등은 2010년대 후반 명품족을 사로잡은 ‘빅 로고’ 디자인들이다. 하지만 올 들어 경기급랭 등의 여파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브랜드 로고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 고급스러운 소재 등으로 부(富)를 은근히 드러내는 게 새로운 ‘멋’으로 부상했다. 이른바 ‘스텔스 럭셔리(조용한 럭셔리)’다. 이에 따라 주로 겨울옷에 쓰이는 고급 소재 캐시미어가 여름 패션 아이템에도 적용되는 추세다.

여름옷에도 고급 캐시미어 사용

25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가 브랜드를 중심으로 캐시미어를 사용한 여름옷이 인기를 끌고 있다. 캐시미어는 산양의 털로 만드는 소재다. 산양 한 마리에서 75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겨울옷에 주로 쓰인다.올 들어선 눈에 띄는 곳에 브랜드 로고나 심벌을 넣는 ‘로고 플레이’가 시들해지면서 소재와 원단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캐시미어를 쓴 여름옷이 주목받는 추세다.

한여름용 캐시미어 제품을 공격적으로 내놓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미국의 컨템포러리 럭셔리 브랜드 ‘빈스’다. 이번 여름시즌을 겨냥해 캐시미어 라인업을 늘린 빈스의 캐시미어 상품 매출(연초부터 7월 중순까지)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했다. 빈스의 대표 제품인 캐시미어 카디건은 70만~80만원대, 7부 소매 니트는 40만원대다.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로 꼽히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로로피아나’ 등도 최상급 캐시미어를 사용한 여름옷을 주력으로 내놓고 있다.

조용한 명품의 시대

주로 면 소재를 쓰던 여름옷에 캐시미어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건 스텔스 럭셔리 및 ‘올드머니 패션’의 부상 때문이라는 게 패션업계의 분석이다. 스텔스 럭셔리는 로고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명품, 올드머니는 집안 대대로 부를 상속받은 상류층을 뜻한다. 이들이 입을 법한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차림새가 올드머니 패션이다.지난해까지만 해도 로고를 강조하는 트렌드가 명품업계의 주류였다. 특히 코로나19 창궐 후 보복소비 영향으로 이런 브랜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구찌 로고, 프라다의 역삼각형 로고,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이 적용된 가방·옷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부를 대놓고 과시하기보다 은근히 드러내는 스텔스 럭셔리가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랐다. 스텔스 럭셔리의 주요 특징은 로고리스(로고가 없는 디자인), 실용적이면서 심플한 디자인, 고급 소재 등이다.

팬데믹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과시용 소비에서 ‘본질’에 집중하는 소비로 흐름이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경제적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미니멀리즘 스타일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들은 유행을 타는 일반 명품 브랜드와 달리 기본 아이템을 바탕으로 품질·장인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