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 이런 곳이 있다고?" 입소문…요즘 뜨는 'MZ 핫플'

압구정에 거인 뜨자…2030 몰려왔다

후지필름의 문화공간 파티클
압구정에 MZ세대 '핫플' 꾸며
미디어아트·회화·설치미술 등
사진뿐 아니라 여러 장르 전시
후지필름코리아가 마련한 서울 청담동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에 소희 작가의 영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후지필름코리아 제공
서울 강남의 대표 상권인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이곳에 자리 잡은 카메라 매장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온다. 삼면의 벽에 ‘에덴동산’이 펼쳐지고, 3차원(3D) 미디어 아티스트 소희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목이 길쭉한 거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카메라 회사 후지필름이 마련한 복합 문화·예술 공간 ‘파티클’이다. 파티클은 전시 좀 다닌다는 아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핫플(핫플레이스)’이다.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사진, 회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카메라 회사가 사진전을 연 적은 많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장을 낸 건 국내에서 이곳뿐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후지필름은 왜 이런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을까.

카메라 회사가 만든 ‘예술 놀이터’

최근 파티클에서 만난 임훈 후지필름코리아 사장(사진)의 답은 명쾌했다. “정체돼 있는 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후지필름이 살아남으려면 20~30대 고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갖고 싶은 건 꼭 사겠다’는 이들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세대죠. 이런 MZ세대를 잡으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죠.”후지필름코리아는 330㎡(100평)가 넘는 지하 공간을 사진 전시장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전시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전시장 이름도 지었다. ‘작은 입자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뜻의 ‘파티클’로.

사진은 파티클이 다루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이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박혜윤 작가,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해 환상적인 디지털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는 나승준 작가, 사람과 개를 주제로 감성적인 드로잉을 그리는 이나영 작가, 전통민화를 소재로 일러스트를 그린 무직타이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4명이 지난해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임 사장은 “과거 사진 전시만 열 때보다 관람객이 300배 이상 늘었다”며 “전체 관람객 10명 중 7명이 20~30대일 정도로 연령대도 낮아졌다”고 했다. 누적 관람객은 2년 만에 2만 명을 넘어섰다.

‘2030 고객’ 비중 2년 만에 2배

소희 작가의 트레이드마크 ‘긴목이’ 설치 작품.
전시장 곳곳엔 후지필름이 숨어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후지필름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이달 31일까지 열리는 3D 아티스트 소희 개인전 ‘weird but beautiful world(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세상)’가 대표적이다. 소희 작가만의 독특한 캐릭터인 ‘긴목이’가 살아 움직이는 영상 작품에 후지필름의 프로젝터를 사용했다.

파티클의 성과는 후지필름코리아의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임 사장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갈수록 향상되면서 전문 카메라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후지필름코리아는 2016년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캐논, 소니, 니콘 등 경쟁사들이 타격을 본 코로나19 기간에도 후지필름코리아의 매출은 늘었다.임 사장은 그 공을 파티클에 돌렸다. 젊은 고객이 늘면서 판매 실적을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후지필름코리아의 20~30대 고객 비중은 2020년 36%에서 지난해 69%로 급상승했다. 임 사장은 “제품 라인업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젊은 고객이 늘어난 건 파티클 덕분”이라며 “문화사업을 통해 본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예술경영’의 성공 사례로 자평한다”고 했다.

처음엔 “뭣 하러 이런 전시장을 만드냐”고 마땅치 않은 눈초리를 보낸 일본 후지필름 본사는 이제 파티클의 성공 사례를 다른 나라에도 적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임 사장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손잡고 전시장에서 영화도 선보이는 등 한층 더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