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효과"…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품 기증 늘어
입력
수정
2021년 기점으로 수집 미술품 중 구입보다 기증 더 많아져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 높아져"…올해도 기증 문의 이어져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이병규(1901-1974) 작가의 작품 5점을 확인하기 위해 유족과 연락했다. 이 과정에서 이 작가의 자녀 5남매는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부친의 작품 13점을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설득해 기증을 추진한 이 작가의 아들 이종성씨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소식을 언론에서 보고 작품의 관리와 보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작가의 작품을 알릴 수 있다는 기회의 측면에서 공공기관 기증이 좋겠다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미술관은 전했다.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2021년 기점으로 기증품> 구입품…지난해 수집품 중 64%가 기증품
25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미술관)에 따르면 2021년을 기점으로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수집한 미술품 중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미술관의 수집품은 2016년 구입 61점, 기증 28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구입품이 기증품보다 많았지만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된 2021년 이후 2년간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2021년에는 1천여점이 대량으로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을 제외하고도 기증품이 553점으로 구입품 93점을 압도했다. 지난해 역시 전체 수집 작품 183점 중 기증품이 117점으로 64%를 차지했다.
최근 10년간을 살피면 2014년과 2015년에도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그러나 당시 미술관이 원로 작가 개인전을 열면서 해당 전시와 관련해 작품을 대규모로 기증받은 특수 사례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021년을 기점으로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늘어난 셈이다. 그동안 기증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가가 작품 일부를 기증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2014년과 2015년 미술관에서 '한국현대작가' 시리즈전으로 각각 개인전을 열었던 서세옥과 황규백이 각각 100점과 판화 223점을 기증한 것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전시와 상관없이 작가가 작품을 기증하거나 개인 소장자가 먼저 작품 기증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술관은 특히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이런 경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 이후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보편화한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 원로 작가·유족 기증 늘어…개인 소장가 기증 사례도
이 관계자는 또 "(컬렉션 기증을 전후해) 상속세 추징 강화나 물납제(세금을 미술품으로 내는 것)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원로 작가들이 자식들에게 작품 관리와 보관에 대한 부담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기증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됐던 2021년 기증 건수를 보면 원로 작가와 작고 작가 유족이 대량으로 기증한 경우가 어느 해보다 많았다.
원로 작가로는 한운성(77) 작가가 자기 작품 63점을 기증한 것을 비롯해 김상구(76) 작가가 41점을, 육명심(90) 작가가 66점을 기증했다.
최만린(1938∼2020) 작가와 이준(1919∼2021), 공성훈(1965∼2021), 김태(1931∼2021), 서세옥(1929∼2020) 작가의 경우는 작고 직후 유족이 작품을 기증했다.
한운성 작가는 부친인 산업디자이너 한홍구의 아카이브를 대량으로 기증한 데 이어 자기 작품도 기증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청주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 8개 국공립미술관에 작품 600여점을 나눠서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술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 소장가가 소장품을 기증한 이례적인 사례도 있었다.
개인 소장가 김모씨는 2018년 부친으로부터 김기창 화백의 1939년작 '물방앗간의 아침'을 물려받았다.
이 작품은 1939년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으로, 김씨의 할아버지가 당시 26세였던 김 화백에게 직접 쌀 백가마니를 주고 구입해 소장하던 것이었고 한다.
김씨는 작품을 직접 연구한 결과 보기 드문 김 화백의 초기작이고 대작이라는 점, 보관 상태가 좋다는 점을 고려해 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미술관에 직접 연락했다.
김씨는 작품 확인을 위해 직접 구입한 김기창 도록과 영상 자료 등도 미술관에 모두 전달했다.
또 다른 개인 수집가 역시 마크 퀸과 앙드레 브라질리에 작품 1점씩을 지난해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역시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영향이었던 것으로 미술관 측은 전했다. ◇ 기증 문의는 늘었지만 관련 인력은 그대로…"대응에 어려움"
미술품 기증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관련 업무 처리 인력은 그대로라 미술관으로서는 업무 부담이 커진 측면이 있다.
기증 문의가 들어오면 학예직 직원이 직접 작품의 상태를 실제로 살핀 뒤 관련 자료를 찾아 연구해야 한다.
이후 연 2차례 정도 열리는 수증심의회의를 거치면 기증이 최종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기증서약서와 필요하면 작품 보증서 등의 서류를 받는다.
작품 사진 촬영과 상태 확인도 필요하고 작품의 내용과 관련해 기증자와 인터뷰도 진행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기증 문의가 많이 늘어난 지금도 관련 업무 인력은 이건희 컬렉션 기증 전과 같은 수준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올해도 기증 문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어 기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인력이 보강되지 않아 대응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 높아져"…올해도 기증 문의 이어져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이병규(1901-1974) 작가의 작품 5점을 확인하기 위해 유족과 연락했다. 이 과정에서 이 작가의 자녀 5남매는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부친의 작품 13점을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설득해 기증을 추진한 이 작가의 아들 이종성씨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소식을 언론에서 보고 작품의 관리와 보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작가의 작품을 알릴 수 있다는 기회의 측면에서 공공기관 기증이 좋겠다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미술관은 전했다.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2021년 기점으로 기증품> 구입품…지난해 수집품 중 64%가 기증품
25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미술관)에 따르면 2021년을 기점으로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수집한 미술품 중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미술관의 수집품은 2016년 구입 61점, 기증 28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구입품이 기증품보다 많았지만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된 2021년 이후 2년간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2021년에는 1천여점이 대량으로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을 제외하고도 기증품이 553점으로 구입품 93점을 압도했다. 지난해 역시 전체 수집 작품 183점 중 기증품이 117점으로 64%를 차지했다.
최근 10년간을 살피면 2014년과 2015년에도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많았다.
그러나 당시 미술관이 원로 작가 개인전을 열면서 해당 전시와 관련해 작품을 대규모로 기증받은 특수 사례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021년을 기점으로 기증품이 구입품보다 늘어난 셈이다. 그동안 기증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가가 작품 일부를 기증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2014년과 2015년 미술관에서 '한국현대작가' 시리즈전으로 각각 개인전을 열었던 서세옥과 황규백이 각각 100점과 판화 223점을 기증한 것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전시와 상관없이 작가가 작품을 기증하거나 개인 소장자가 먼저 작품 기증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술관은 특히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이런 경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 이후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보편화한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 원로 작가·유족 기증 늘어…개인 소장가 기증 사례도
이 관계자는 또 "(컬렉션 기증을 전후해) 상속세 추징 강화나 물납제(세금을 미술품으로 내는 것)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원로 작가들이 자식들에게 작품 관리와 보관에 대한 부담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기증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됐던 2021년 기증 건수를 보면 원로 작가와 작고 작가 유족이 대량으로 기증한 경우가 어느 해보다 많았다.
원로 작가로는 한운성(77) 작가가 자기 작품 63점을 기증한 것을 비롯해 김상구(76) 작가가 41점을, 육명심(90) 작가가 66점을 기증했다.
최만린(1938∼2020) 작가와 이준(1919∼2021), 공성훈(1965∼2021), 김태(1931∼2021), 서세옥(1929∼2020) 작가의 경우는 작고 직후 유족이 작품을 기증했다.
한운성 작가는 부친인 산업디자이너 한홍구의 아카이브를 대량으로 기증한 데 이어 자기 작품도 기증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청주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 8개 국공립미술관에 작품 600여점을 나눠서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술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 소장가가 소장품을 기증한 이례적인 사례도 있었다.
개인 소장가 김모씨는 2018년 부친으로부터 김기창 화백의 1939년작 '물방앗간의 아침'을 물려받았다.
이 작품은 1939년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으로, 김씨의 할아버지가 당시 26세였던 김 화백에게 직접 쌀 백가마니를 주고 구입해 소장하던 것이었고 한다.
김씨는 작품을 직접 연구한 결과 보기 드문 김 화백의 초기작이고 대작이라는 점, 보관 상태가 좋다는 점을 고려해 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미술관에 직접 연락했다.
김씨는 작품 확인을 위해 직접 구입한 김기창 도록과 영상 자료 등도 미술관에 모두 전달했다.
또 다른 개인 수집가 역시 마크 퀸과 앙드레 브라질리에 작품 1점씩을 지난해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역시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 영향이었던 것으로 미술관 측은 전했다. ◇ 기증 문의는 늘었지만 관련 인력은 그대로…"대응에 어려움"
미술품 기증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관련 업무 처리 인력은 그대로라 미술관으로서는 업무 부담이 커진 측면이 있다.
기증 문의가 들어오면 학예직 직원이 직접 작품의 상태를 실제로 살핀 뒤 관련 자료를 찾아 연구해야 한다.
이후 연 2차례 정도 열리는 수증심의회의를 거치면 기증이 최종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기증서약서와 필요하면 작품 보증서 등의 서류를 받는다.
작품 사진 촬영과 상태 확인도 필요하고 작품의 내용과 관련해 기증자와 인터뷰도 진행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기증 문의가 많이 늘어난 지금도 관련 업무 인력은 이건희 컬렉션 기증 전과 같은 수준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올해도 기증 문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어 기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인력이 보강되지 않아 대응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