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거짓이 거짓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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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나는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다쳐 뛰어 도망칠 수 없어서다. 거짓말은 곤란한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기만의 술책일 뿐이다.” 자주 하신 아버지의 저 말씀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외출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남동생과 내가 호박엿 먹는 걸 보고 무슨 돈으로 샀느냐고 했다. 내가 얼른 “지난번 오신 손님이 주신 용돈으로 샀다”라고 했다. 아버지 책상 위에 있는 돈으로 산 걸 둘러댄 거짓말은 이내 들통났다. 엿장수가 찾아와 “이 집 아들 둘이 큰돈을 가져왔길래 엿을 먼저 줬다”며 어머니에게 거스름돈을 내밀고 나서다.
무심결에 한 거짓말의 벌은 혹독했다. 아버지는 바로 옷을 벗으라고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기고 내쫓았다. 벌거숭이인 채로 둘은 초겨울의 논 한가운데 서서 길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소문이 그새 퍼져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해 질 녘에 어머니가 아버지 눈을 피해 울고 있는 둘을 싸안고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화난 아버지는 살림의 반은 두들겨 부쉈다. 방에 들어왔어도 오들오들 떨며 독한 한기를 느꼈다.이튿날부터 연이틀에 걸쳐 아버지는 거짓말하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 거짓말에 대한 가르침은 훗날에도 계속됐다. 아버지는 “사람은 하루에 한두 번 정도 거짓말한다. 하루에 한 말의 2%는 거짓말이다”라는 자료를 보여줬다. 거짓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자기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다”라고 분석한 아버지는 “거짓말은 해법이 아니라 감출 뿐이다. 감추는 행위가 가장 나쁘다.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확신시켜 진실을 은폐하는 속임수다”라며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속임수는 위험하고 비겁하다”며 인용한 고사성어가 ‘하늘과 땅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는 뜻인 ‘만천과해[瞞天過海]’다. ‘손자병법’에 나온다. 손자는 “전쟁은 속임수의 길이다. 적을 속여서 승리하라”고 했다. 그러나 “속임수를 쓰면 적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한 손자마저 “속임수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기도 하다”며 쓸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탄로 나지 않는 거짓말은 없다”라고 단정하면서 “거짓말은 죄악이다. 모두를 피폐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저버린다”고 죄악시하며 두 번째로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들었다. 해마다 늘어가는 소송 건수 기사 스크랩을 건네주며 아버지는 “원고와 피고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해서 생긴 사회적 병폐다”라며 개탄했다.“거짓이 거짓을 부른다. 거짓말이 습관 되면 진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잃는다”라고 걱정하며 세 번째 이유를 설명했다. 거짓에 익숙해져 진실을 분별할 능력이 사라지는 게 두렵다고까지 했다. 진실을 말하는 습성은 정확하게 사고하는 습성에서 나온다.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준비하면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지 못한다”며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거짓을 대할 때마다 그것이 가려져 있을지라도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거짓말에 쏟는 힘의 반만 들여도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경쟁에서 저편은 진실로 무장하고 덤빌 때 나는 반밖에 전력을 쓰지 못하면 반드시 패한다”며 거짓말은 안 된다고 다시 강조했다.
아버지는 “거짓말은 또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나를 속이며 얻는 소득이 솔직하게 대처해 얻는 것보다 못하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네 번째 이유를 들어 거짓말을 경계했다. “값싼 거짓말이 참혹한 대가를 부른다. 거짓말은 소멸하지 않고 커가며 앞으로 나가려는 너를 붙잡는다. 거짓말이 너의 진취성을 좀먹는다”라고 했다. 지금도 외우는 그때 말씀한 영국 속담이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 동안 행복해지고 싶거든 결혼을 해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여라.’
진실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인성이 정직성이다. 항상 진실을 말하고, 내 잘못을 인정하고, 남을 속이지 않으면 신뢰를 얻고 존경받는다. 정직성을 기르기는 쉽지 않지만, 정직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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