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방학생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할 때' 생기는 일

[arte]황수미의 노래의 날개 위에
무심코 한참 티비 채널을 돌리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손끝이 멈췄다. 평범한 직장, 평범한 가정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여주인공의 삶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무한 감정’은 그녀에게 그간 주어졌던 모든 것을 버리고 진짜로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나도록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항상 쉼 없이 일하고 짧게 쉬는 순간마저 다음 일정을 고민하는 미국인 (영화 속 여주인공)에게 이탈리아인들이 게으름의 달콤함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학기 말이 되어 연주와 수업으로 지칠대로 지쳤던 나에게 “Dolce fa niente”는 그 문장 고유의 달콤함 이상으로 내 귓전에 계속 맴돌았다. 한가함보다는 바쁜 일정을 선호했던 편이라 생각했는데 무한한 output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쩐지 육체적인 고단함보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다. 유럽에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만 생각하며 지냈던 터라 사실 원하는 만큼 노래가 되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교육자, 연주자를 병행하며 아무래도 사무적인 미팅도 많아지고 긴장해야 하고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어찌나 많던지 확실히 학기 말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기력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Spazieren, 산책하다' 라는 단어는 기초 독일어 수업에서부터 수도 없이 나오며 실제로 독일인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 중 한 부분이다. 나 역시 산책을 즐겼는데 그 시간은 참 많은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또 매일 짧게라도 적었던 그날의 일기들은 나를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독일에서의 삶은 너무 단순하고 때로는 따분하기까지 했지만 온전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매일 매일 조금이라도 자리하고 있었다.

Input이 필요했다. 기본적인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음악을 참으로 즐길 여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음악을 나눌 에너지가 충분한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느 선생님이 방학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을 위한 시간이라고 하셨는데 요즘 나는 시간 구애받지 않고 연습하고 걷기도 하고 일기나 생각들을 적기도 하며 멍때리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것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나름의 훈련이 필요하다. 일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짧은 순간들을 찾아 누리는 여름이 되시기를. Dolce fa niente (무위의 달콤함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