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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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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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버먼(Morris Berman)은 자신의 저서 『암흑기의 미국』(Dark Ages America)에서 미국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한다. 교육 시스템의 위기, 높은 대외 채무, 높은 영아사망률, 의료보험 체계 파산... . 민주주의 시스템은 스스로 오류를 교정하기 어려운 단계로 나아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가치의 전도, 그로 인한 정신적인 피폐다.가치의 전도는 자아의 과도한 확장 욕망, 집착, 두려움에 떠는 마음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서로를 물고 뜯는 비참한 세계를 앞당긴다. 그런 세계에서는 타인에 대한 냉담함이 미덕이 되고, 마음은 상처와 슬픈 기억으로 얼룩진다. 이러한 가치의 전도는 예술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일례로, 제프 쿤스의 <Made in Heaven> 연작이 “관습에 불응하는 영웅적인 전위”로 추대될 때 그렇다. 제프 쿤스와 일로나의 포르노그래픽한 정사, 클로즈업된 성기 접촉은 “예술과 언어의 모호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통속적인 독자성” 으로 기술된다. 난독증을 의도한 것일까?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진지한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취미인 듯한 이러한 주석들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다. 가치의 전도를 정당화하기와 논쟁을 사전에 차단하기.이런 과정을 거쳐 단련된 개념이 ‘키치-전위주의’다. 이번에는 의미의 부정교합이다. 키치가 전위가 되면 키치도 전위도 어그러지고 말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조짐이,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에 이르러서 이미 완연해진 흐름이다.
▲Jeff Koons, <Made in Heaven Suite Pop Life>, 2009, Tate Moder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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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나 본명 안나 스텔러(Ilona Anna Staller) 배우명 치치올리나(Cicciolina), 1980년대 잘나가는 포르노배우였고, 이 경력을 이용해 198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 이탈리아 의회에 진출했다. 의정활동도 포르노배우 경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해 사담 후세인이 세균폭탄과 인질을 포기한다면, 그와 한두 번쯤 잠자리를 함께 할 용의가 있다” 등의 발언이 그 한 사례다(1990년 9월) 이런 일로나의 존재야말로 쿤스에게 해방구와도 같았다.억압된 대중에 성적 위로를 제공하는 직업과 성적 해방 담론을 전개하는 자신의 직업이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의회에 진출해 포르노와 의회민주주의의 가교가 되었던 경력은 순수미술에 포르노를 통섭하려는 자신의 의도에 본이 되었다.1990년부터 쿤스와 일로나는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채 2년이 안 되어 둘 사이의 불화가 극에 달했다. 6년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끝내 정식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투쟁은 이후 14년 동안 지속되었다. 양육권은 일로나에게 넘어갔고 쿤스는 양육비를 제공해야 했다. 일로나의 회고에 의하면, 쿤스와의 결혼생활은 둘 모두가 상상했던 해방된 천국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빠져나올 궁리 외엔 다른 어떤 생각도 불가능했던 해방의 불모지, 신뢰의 파괴, 감정적 피폐, 증오로 점철되는, 지옥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일로나의 기억에 의하면, 결혼생활 중 그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그녀의 애완견이었다. 쿤스는 온종일 비디오만 보았다. 2008년 <벨파스트 텔레그라프>(Belfast Telegraph>지에 실렸던 한 인터뷰(2008)에서 그녀는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아주 짧게, 하지만 분명하게 고백했다. “...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평생 동안 내가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것만큼은 분명해요.” 일로나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고 없이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Made in Heaven>에 담긴, 쿤스가 꿈꿨고 펼쳤으며 일로나에서 보았던 해방 담론의 실체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의 연속, 무책임의 절정, 관계의 파괴, 따듯함의 파괴, 지울 수 없는 상처, 이야기의 결말은 기묘하게도 다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로 회귀한다. 영겁회귀, 필연성에 대한 사랑, 아모르 파티(amor fati), 비극 자체인 운명을 사랑하기,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을 초인의 조건이라 하지 않았던가.
쿤스의 키치-전위주의는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이 이해와 오해의 교차 속에서 마주하는 ‘니체주의’를 소환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가 요약한 바에 의하면 그 철학의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첫째, 신의 죽음, 그리고 지난 2천년 간의 금욕적 이상의 압정(壓政)에서 벗어나는 것: 즉 육체와 본능에 대한 증오,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증오, 생명과 즐거움에 대한 증오를 강요하는 ‘노예 종교’로 제시되는 종교인 기독교를 극복하는 것. 이 층위는 이 미국의 키치-전위주의자의 해방 담론의 밑단을 구성한다.
둘째, 존재 또는 존재하는 것의 비극성과 영원회귀의 필연성을 사랑하는 것: 자유는 환상에 불과하며 다만 이제껏 인간이 존재해온 대로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영원회귀설)을 아는 것, 더 나아가 알면서도 존재하는 것의 필연적인 비극성을 사랑하는 것.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비극적인 운명애, 그 품에 안기는 초인의 해방을 설파하기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예수가 설교를 시작했던 나이인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가 세상의 계곡에 내려와 가르치려 했던 해방이다.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결말지워지는 해방 말이다. 반면 미국의 키치-전위주의자의 해방 담론은 이 층위를 정교하게 누락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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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양복을 즐겨 입는 쿤스의 키취적 해방은 존재의 비극성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 점에서 전혀 지적이지 않다. 고통도, 고통을 유발하는 현실도 없는 해방이라니! 이 의사 해방은 사자 한 마리와 뱀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차라투스트라의 디오니소스적 설교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그저 시럽을 잔뜩 뿌린 듯한 용어들의 끝이 없는 도열이다. “나는 그것-포르노-에 전혀 관심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사랑이고, 나를 다시 근본으로 융화시키는 것이고,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이다.”
쿤스는 자신의 <Made in Heaven> 연작이 성적 쾌락과 그것의 대리 경험에 초점이 있는 것들과는 다른 자유와 해방의 통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것이 제기하는 ‘해방된 상태’의 진정한 의미는 호사가들과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는 그 달콤함에 있다.
심상용
서울대 미대 회화과 졸업, 파리 제8대학 조형예술학 석·박사, 파리 제1대학 미술사학 박사, 서울대미술관장 겸 서울대 조소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