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전투기 잇단 도발에 미·러 일촉즉발 대치…확전우려 고조

美군용기 앞에 섬광탄 터뜨리고 수차례 위협비행까지
직접적 무력충돌 벌어지면 '우발적 전쟁' 치달을 우려도
12년째 내전이 이어지는 시리아에서 현지 주둔 미군을 겨냥한 러시아 전투기의 도발이 잇따르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졸전으로 체면을 구겼지만 세계 2위 군사대국이자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최강대국인 미국 간의 직접적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중동과 이집트, 서아시아 등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 예하 제9공군은 2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한밤 중 시리아에서 미군 드론(무인기)이 러시아 전투기에 의해 손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틀전인 23일 0시 23분께 이슬람국가(IS) 격퇴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MQ-9 '리퍼' 드론을 상대로 위협비행을 하던 러시아군 전투기가 MQ-9 바로 위 수미터 거리에서 미사일 교란용 섬광탄(플레어)을 투하했다는 것이다. 제9공군은 이중 한 발이 MQ-9에 맞아 프로펠러가 파손됐지만 다행히 추락하지 않은 채 기지로 귀환했다면서 "러시아 전투기의 노골적인 비행 안전 무시는 IS를 확실히 격퇴한다는 우리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시리아 상공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일촉즉발의 대치를 벌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5일에도 러시아 수호이(SU)-35 전투기가 미군 MQ-9 드론들에 접근해 플레어를 발사, 회피기동을 유도하는 일이 있었다. 이어 14일에는 러시아의 안토노프-30 정찰기가 시리아의 미군 기지 상공을 여러 차례 왕복 비행하며 정보 수집을 했고, 16일에는 러시아 전투기가 IS를 정찰하던 미군 유인 정찰기 MC-12의 비행을 방해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이전까지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는 시리아에서 6㎞ 이상 간격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흑해 상공 국제공역에서 미군 MQ-9 드론이 러시아군 수호이(SU)-27 전투기에 들이받혀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진 올해 3월 이후 러시아 전투기가 미군 군용기에 접근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에는 러시아군 조종사들이 시리아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dogfight)을 벌이려 시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중부사령부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AP 통신은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 미 정부 내에서 러시아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군사적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이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식 대응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러시아가 의도한 바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공군 퇴역대령인 제프리 피셔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러시아의 행위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아마도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외교적이거나 소프트파워를 동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 반응을 이끌어내길 원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간의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우발적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까닭인지 미 국방부의 사브리나 싱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확전을 추구하지 않으며, 러시아와의 전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 전투기들이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을 상대로 도발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 산하기관인 시리아내 분쟁당사자화해센터의 올레그 구리노프 부소장은 "국제 공역이 통과하는 알탄프 지역의 시리아 영공을 F-16 4대와 라팔 2대, 타이푼 전투기 2대가 어제 하루에만 12차례나 침범했다"고 25일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