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만 당하는 ‘별종’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어요”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주민현 지음
창비
188쪽│1만1000원
“1500년대 유럽에선 머리 긴 여자들을 ‘마녀’라고 불렸대요. ‘남들과는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곤 했죠. 지속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선 이런 사람들까지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두 번째 시집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를 펴낸 주민현 시인(33·사진)은 “우리가 ‘나’라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멀리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7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코로나와 기후 위기, 전쟁 등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는 이러한 연대와 포용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주민현 시인은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2017년 등단하고 처음 내놓은 <킬트, 그리고 퀼트>(2020)에선 뜨개질을 뜻하는 ‘퀼트’를 통해 남성과 여성 사이 단절을 봉합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했다. 주 시인은 “첫 시집이 여성 개인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생태와 환경 등 인간이 아닌 존재로 시선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51편의 시를 통해 그려냈다. <꽃 없는 묘비>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과 한국에 있는 화자를 대비하면서 전개된다. 주 시인은 “코로나를 통해 사회가 격리됐지만, 역설적으로 같은 호흡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며 “멀리 떨어진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해서도 책임과 연대 의식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가 일상에서 마주친 문제들은 시의적이면서도 다양하다. 세계적 규모의 재난을 비롯해 ‘묻지마’ 살인, 산업재해, 성희롱, 아동학대 등 온갖 사건과 이슈를 다룬다.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 시인은 “주민현이 보여주는 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보도되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재난의 이야기들”이라고 평가했다. 주 시인은 사회적 문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상호 연대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전구의 비밀>에선 어둠 속에서 “서로의 집을 방문해 번쩍 불이 들어”오고, <밤은 신의 놀이>는 폭우로 불어난 강물로 “모든 곳이 연결되는” 상황을 그린다.

시인이 제시하는 연결은 “우리가 쉽게 놓치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변화는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의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그의 시들은 “땅바닥의 이름 모를 벌레들” “별종, 침묵, 가려움, 재채기” 등 평소 무시당하는 존재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저의 시는 어둡고, 작고, 밝혀지지 않은 것들을 조명한다고 생각해요. 소수자, 여성,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등 누구나 여기 해당하죠. 시집 제목처럼 ‘멀리 가는 미래’를 위해선, 서로 연결되고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