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조인성과 로맨스? 없어서 더 좋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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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수' 조춘자 역 배우 김혜수전복 대신 밀수품을 끌어 올리던 해녀에서 밀수 보따리 업자로, 또다시 그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해녀들의 든든한 맏언니로 영화 '밀수'에서 김혜수의 역할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만큼은 변함이 없다.
'밀수'는 김혜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남의 집 식모로 살다가 그를 겁탈하려는 주인집 남성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군천까지 오게 됐다. 그곳에서 아버지 같은 선장(최종원 분)과 자매 같은 엄진숙(염정아 분)을 만났고, 해녀가 됐다. 하지만 화학공장 때문에 바닷물이 오염돼 해산물이 썩어가자 먹고 살기 위해 밀수품을 걷어 올리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조춘자는 카리스마와 섹시함, 여기에 유머까지 갖춘 캐릭터였지만, 연출자인 류승완 감독이 김혜수에게 "따로 주문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그런 류승완 감독의 신뢰에 김혜수는 "완전히 믿어 주셨다"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밀수' 사전 작업을 할 때 저는 넷플릭스 '소년심판'을 촬영하고 있었고, 감독님도 영화 '모가디슈' 후반 작업을 할 때였어요. 만날 기회가 많진 않았지만, 문자, 통화로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죠. 감독님은 굉장히 많이 열려있고, 잘 수렴하고, 효과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이었어요. 쉴 틈 없이 촬영에 합류했지만 불안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김혜수는 조춘자의 키워드를 '생존'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생존을 위해 군천으로 왔고, 밀수를 하고, 권 상사(조인성 분)와의 만남에서도 생존을 위해 임기응변을 해서 군천으로 이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진심보다는 삶을 위해 위장하는 모습으로 접근했다"고 전했다.전작인 '소년심판'의 차가운 분노와 냉정한 판단력을 가진 판사 심은석에서 1970년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밀수' 조춘자로 곧바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치열했던 김혜수의 노력 덕분이었다. 김혜수의 모습에 후배 배우인 박정민, 고민시도 존경심을 드러냈다. 박정민, 고민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스타였고, 현재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김혜수는 "그냥 나이를 먹어 촬영장 맏언니가 됐을 뿐, 제가 뭘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서 "전 저의 걸 하기 바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작품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 함께 출연한 배우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완 감독님 작품을 좋아했어요. '베를린', '베테랑' 같은 액션도 '다찌마와리' 같이 영화적인 베이스를 한 작품도 색깔은 다르지만 진중함과 가벼움, 그리고 유머가 공존해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것보다 그냥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이라 그 힘이 더 큰 거 같아요."김혜수는 영화 '도둑들'에서 수중 장면을 찍으며 공황을 처음 경험했다. '밀수'에서는 절반 이상이 물에서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중 장면도 많았지만, 김혜수는 이 역시 극복해냈다.
"원래 물을 좋아했고, 수영도 할 줄 알아요. 그런데 물속에서 제 몸이 제대로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 밖에 안들더라고요. 나중에 그게 공황 상태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 물에 안 들어갔는데, 이 작품은 물이라는 공간에 할애된 비중이 있고, 역할도 해녀잖아요. 다른 배우 중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염정아 씨는 실제로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훈련받고 캐릭터에 맞게 움직이는 게 감동이었어요. 저도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유로워졌어요. 물이 편해졌고요."
단순한 '물질' 뿐 아니라 '밀수'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수중 액션까지 대부분의 장면을 김혜수는 "대역 없이 직접 했다"고 했다. "바다, 배, 수중 세트에서 한 달 이상 촬영했다"며 "세관이 밀수하는 걸 적발하는 장면은 직접 배를 띄워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1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밀수'에 대한 애정으로 눈을 반짝였던 김혜수는 "특히 조인성 씨와 로맨스가 없었던 게 좋았다"며 "심플하게 서로가 서로의 바닥까지 알고 이용하는 비즈니스 관계"라고 전했다. 극 중 조춘자와 권 상사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도 엿보이는데, 김혜수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져 상대에 대해 뭔가를 목격할 때, 내가 머리로 알던 관계와 나도 못 느꼈던 감정이 공존하는 미묘한 순간이 있지 않나"라며 "그런 게 포착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조인성의 출연에 대해 "정말 고마웠고, 그 자체가 힘이 됐다"며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에 임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잘생기고 멋있는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꽃미남으로 시작해 배우로 멋지게 성장한 그분의 한 순감을 함께 공유한 건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조인성이 연기한 권 상사와 달리 '워맨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질리게 미워하고, 원망하고, 사랑하는 존재였던 엄진숙 역을 맡은 염정아에 대해서도 "이전부터 (염)정아 씨 연기를 너무 좋아했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물속에서 조춘자와 엄진숙이 서로 손을 맞잡고 밀고, 당기는 장면을 "제가 제일 좋아했던 부분"이라고 꼽으며 웃었다.
"원래 역량이 있는 배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가 발휘되는 거 같고, 그걸 공감해주는 관객들이 있다는 게 기뻐요. 동시대 배우로서 함께 뭘 하는 것도 좋고요.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해가는 배우이기에 존경심 같은 것도 있고요. 그런 배우가 쉽지 않거든요. 연기를 할 때도 유연하고 동글동글해요. 불편함이 없어요. 다른 배우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자신을 부담 없이 드러내면서도 자기의 것들을 냉철하게 잘 해내요. 그래서 염정아라는 이름이 신뢰감을 주고, 그런 귀한 배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주변 사람들은 칭찬하면서도 김혜수는 정작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평에는 냉정했다. 섹시 아이콘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다른 배우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배우라는 찬사에도 "나이를 먹으니 제 역할, 제 책임감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며 "전 제 연기를 하느라 뭘 해야 한다는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조춘자를 연기하면서도 뭔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각각의 장면에 충실했어요. 조춘자를 보면서 '타짜' 정 마담 같은 팜파탈을 떠올리는 분도 있다고 하시는데, 제 역할을 아직도 많은 관객분이 기억해주신다는 것에 감사하지, 그 배역을 완전히 배제하고 새로운 걸 하려고 애쓰진 않았어요. 그 자체에 충실해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싶었죠.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이 부분에 동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열심히 했다' 정도지, 실패한 거니까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