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 홍콩서 17년 역사 성소수자 라디오 프로 폐지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홍콩에서 17년 역사의 성소수자(LGBTQ) 라디오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공영방송 RTHK는 이날부로 성소수자 라디오 프로그램 '위 아 패밀리'(We Are Family)를 폐지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위 아 패밀리'는 2006년부터 매주 일요일(밤 12시∼오전 2시)에 방송돼 왔다.

RTHK 대변인은 SCMP에 "프로그램 전략상 폐지한다"고만 밝혔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진행해온 DJ 브라이언 륭은 SCMP에 "프로그램 폐지로 성소수자 인권에서 긴 겨울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RTHK가 2006년 내게 '위 아 패밀리' 진행 제안을 했을 때 나보다 더 놀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RTHK는 매우 보수적인 플랫폼이다"라고 돌아봤다.

보수적인 공영방송에서 파격적으로 시작한 '위 아 패밀리'는 성소수자 인권을 다루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명하며 홍콩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쪽에서 방송국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은 17년 동안 장수했다. 지난 5월 홍콩중문대가 18세 이상 홍콩인 1천5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앞서 2017년에 진행된 같은 설문에서는 찬성이 50.4%였다.

륭은 그러나 언제든 '위 아 패밀리'가 폐지될 수 있다는 각오를 했다면서 특히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중국의 홍콩 장악이 강화되면서 마음의 준비를 더 했다고 토로했다. 중국에서는 성소수자 문제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1997년 동성애 처벌을 폐지했고 2001년에는 정신장애 목록에서도 동성애를 삭제했다.

그러나 동성 결혼은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인식도 낮다.

TV와 영화에서 동성애를 묘사하는 것은 금지되며 지난해에는 동성 데이트 앱이 사라졌다.

또 지난 5월에는 15년 역사의 베이징 LGBT 센터가 폐소를 발표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 탓"이라고 밝혔다.

'위 아 패밀리'의 폐지는 오는 11월 3∼11일 홍콩에서 열릴 예정인 성소수자들의 스포츠 축제 '게이 게임'(Gay Games)이 홍콩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우려로 타격을 입은 가운데 발표됐다.

앞서 SCMP는 일부 해외 관리와 참가자들이 홍콩국가보안법을 무의식적으로 위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홍콩 '게이 게임'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982년을 시작으로 4년마다 개최된 '게이 게임'의 직전 대회는 2018년 파리에서 개최돼 당시 1만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올해 홍콩 대회 조직위는 약 3천명의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 게이 게임 연맹'의 명예 종신 회원인 미국의 섀미 크레이머는 SCMP에 "현재의 홍콩은 2016년 게이 게임의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와 같은 도시가 아니다"라며 홍콩에 안전과 안보 이슈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홍콩의 성소수자 스포츠 단체는 현지 마라톤 대회에서 경찰이 자신들에게 무지개 깃발을 치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무지개색은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