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단 한번 뿐이어서 다행인 신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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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자신의 처지나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보상이 주어진 경우에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보상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진 않다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최소한 전생에 나라를 구한 큰 무리들 중 하나는 되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라는 말과 ‘이번 생은 망했네’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면서 마치 이번 생이 아닌 저번 생이나 혹은 다음 생, 즉 생이 여러 번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들이 10년 전부터 주로 ‘시간 여행’이 트렌드여서 현재의 불행을 초래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불행의 씨앗을 제거하는 이야기가 트렌드더니, 요즘은 전생과 이생을 오고가는 ‘윤회’가 트렌드인가 싶습니다.웹툰으로 인기가 있어 최근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19회차 인생을 살면서 그 인생을 모두 기억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바로 이점부터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여러 회차의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살아서인지, 주인공은 ‘이번 생’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속세를 떠난 수도승처럼 삶을 대하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생을 살아가려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자신의 생이 여러 번이라는 것을 알면 오히려 주어진 생에 매번 최선을 다하진 않을 겁니다. 마치 안 풀리는 게임을 리셋하듯이 말입니다.우리에게 생은 단 한번 뿐이고, 누구의 인생이건 끝은 언제나 공평한 죽음이라는 생각은 욜로(Yolo)라는 말로도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책의 저자 알베르 카뮈는 다른 작품 <시지프의 신화>에서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통해 카뮈는 ‘삶이 정말 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삶에서 의미를 찾은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거나, 자살을 고민하겠죠.
물론 카뮈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끝없이 도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운명에 오히려 축복을 해야 한다고 해요. 카뮈의 이 말은 삶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인생이 한 번 뿐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거꾸로 이야기하면 인생은 한 번 뿐이기 때문에 ‘내가 편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며 살자는 생각에서 무절제한 삶의 유혹도 커질 수 있어서, 생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생각은 딜레마를 낳습니다. 단 한 번뿐인 생이니까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온갖 쾌락을 누리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단 한 번뿐인 생이니까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하는 것이죠.종교개혁 시기 칼뱅은 천국에 갈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습니다. 천국에 갈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정해져 있으므로, 아무렇게나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살듯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도 될까요? 천국에 갈지 그렇지 못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괜히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손해일 테니까요.
얼핏 그럴 듯한 주장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절제하고 방탕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했죠. 핵심은 천국에 갈지 그렇지 못할지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해진 결과를 알지 못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천국에 갈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라도 더욱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던 겁니다.
생이 한 번 뿐이라는 생각은 얼핏 ‘내 인생 다음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의 죽음과 더불어 우주 전체가 붕괴해 버리는 것이죠. 내가 죽으면 끝인데 미래가 뭔 소용인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 후손이 없다면 그런 생각은 더욱 견고해지겠죠. 이런 생각들이 많아져서 인지, 지금처럼 살다가는 곧 지구에서 인류가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매일 나오는 대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꽤나 여유로워 보입니다. 그 종말의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만약 <이번 생도 잘 부탁해>처럼 우리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더욱 더 뜨거워진 지구에서 숨도 쉬기 어려운 생을 다시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계속해서 더욱 뜨겁게!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온몸으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모습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왜 부질없는 저 짓을 멈추지 않을까싶지요. 하지만 매일같이 힘겹게 눈을 뜨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또 피곤하게 잠을 청하는 각자의 바위를 성실하게 밀어 올린 숭고한 생들이 모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바통을 넘겨준 것이라면, 우리도 남의 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빌려 쓴 무언가를 깨끗하게 돌려주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