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소리, 검은딱새 소리… 평창은 지금 '음악 오마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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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축제가 됐으면 합니다. "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56·사진)이 밝힌 이번 음악제의 목표다. 지난 26일 개막한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7월28일~8월5일)가 강원도 일대를 음악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번 음악제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 양 감독의 말처럼 자연과 관련있는 익숙한 곡과, 낯선 곡이 균형있게 배치됐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을 찾고자 고심한 결과였다. 지난 27일 밤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악단 '키이우 비루투오지'의 공연이 그랬다. 러시아의 전쟁으로 피난 중인 이 악단은 모두에게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줬다. 두 명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자로 나섰다. 이지윤이 봄과 여름을, 박지윤이 가을과 겨울을 나눠 협연했다.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본 사계. '일상 속 음악'이 된 레퍼토리지만, 이날 공연만큼은 남달랐다. 이는 개성 있는 협연자들과 해외 악단의 조합 덕분에 가능했다. 이들은 신선한 음색, 해석을 통해 관객을 매료했다.
첫 협연자인 이지윤은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을 맡은 인물이다. 칼 닐슨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6),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3) 등 등 유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대부분의 국제콩쿠르 우승자들과 달리 솔리스트 활동뿐 아니라 악단에서 합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의 연주는 존재감이 뚜렷하면서도 지나치게 튀지 않았다. 강렬한 동시에 편안한 연주를 들려줬다. 그가 화사하고 선명한 음색으로 봄의 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음반으로 들어온 봄 1악장보다 훨씬 극적이고 트렌디한 초입부였다. 화사한 음색으로 시작부터 무대를 사로잡더니 카덴차에서는 눈을 뗄 수 없는 기량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곧이어 '여름'에서는 특유의 격정적인 에너지로 거센 폭풍우를 그려냈다. 키이우 비루투오지와 합주하는 부분에서는 모두가 소나기처럼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었다. 빗방울을 묘사하는 반복음은 여름의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여름이 끝나고, 이번엔 박지윤이 가을 겨울 연주를 이어갔다. 박지윤은 올해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은 연주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악단 중 하나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종신악장이기도 하다. 그는 여유롭고 경쾌한 연주로 풍성한 가을을 담았다. 특히 그는 수시로 악단과 아이컨택을 하며 함께 호흡했다. 가을에서는 수확의 기쁨에 춤을 추듯 감미로운 선율을 노래하며 풍부하게 표현했다. 겨울 3악장에서는 이내 순식간에 급변하는 겨울바람의 매서움으로 대조를 이뤘다. 양 감독은 이들을 두고 "탁월한 연주력뿐 아니라 익숙한 곡도 재해석을 할 수 있는 연주자를 섭외하려 애썼다"고 말했다.사계가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면 28일 오후에 열린 공연은 '심화 과정'에 속했다. 이날 영국 피아니스트 로데릭 채드윅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새의 카탈로그' 중 일부를 들려줬다. 이 곡은 '새 덕후'로 유명한 메시앙(프랑스 조류학회 회원이기도 했다)이 새소리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다. 메시앙이 프랑스 방방곡곡, 해외를 다니며 새소리를 수집해 작곡한 독창적인 곡으로 곡에 묘사된 새 종류만 해도 77종이다.'흰머리딱새'는 고음역에서 리듬감 넘치는 불협화음이 두드러진다. 참을성 없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정확히 묘사했다고. '올빼미'는 밤에 들리는 공포스러운 올빼미 소리를 담았다. 이외에도 '검은딱새', '유라시안갈대딱새' 등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새소리와 색채 시간의 흐름 등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세밀하게 담았다. 공감각자로 알려진 메시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났다. 오감을 서로 연결해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공감각자라 한다. 세계적인 테너로 꼽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악보 음표를 색으로 인지한 공감각자로 전해진다.
영국 피아니스트 로데릭 채드윅은 메시앙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만큼 탁월한 해석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작품을 주제로 책을 쓸 정도로 지적인 연주자다. 복잡한 악보를 보기위해 연주할 때는 안경을 착용했고, 마이크를 잡고 곡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덧붙였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끼워 넣었다. 마치 숲속을 거닐다 새를 마주하는 듯한 연출이었다.
난해하고 복잡한 현대곡인 만큼 연주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이제야 끝났다, 참 어렵다'는 의미의 탄식이었다. 전날 친숙한 사계를 듣고는 '탄성'이 나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새에 대한 메시앙의 집념과 독창성은 일반 청중에게는 꽤나 벅찬 체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 감독의 말처럼 대중성과 예술성, 각각이 두드러진 작품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56·사진)이 밝힌 이번 음악제의 목표다. 지난 26일 개막한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7월28일~8월5일)가 강원도 일대를 음악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번 음악제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 양 감독의 말처럼 자연과 관련있는 익숙한 곡과, 낯선 곡이 균형있게 배치됐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을 찾고자 고심한 결과였다. 지난 27일 밤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악단 '키이우 비루투오지'의 공연이 그랬다. 러시아의 전쟁으로 피난 중인 이 악단은 모두에게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줬다. 두 명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자로 나섰다. 이지윤이 봄과 여름을, 박지윤이 가을과 겨울을 나눠 협연했다.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본 사계. '일상 속 음악'이 된 레퍼토리지만, 이날 공연만큼은 남달랐다. 이는 개성 있는 협연자들과 해외 악단의 조합 덕분에 가능했다. 이들은 신선한 음색, 해석을 통해 관객을 매료했다.
첫 협연자인 이지윤은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을 맡은 인물이다. 칼 닐슨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6),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3) 등 등 유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대부분의 국제콩쿠르 우승자들과 달리 솔리스트 활동뿐 아니라 악단에서 합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의 연주는 존재감이 뚜렷하면서도 지나치게 튀지 않았다. 강렬한 동시에 편안한 연주를 들려줬다. 그가 화사하고 선명한 음색으로 봄의 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음반으로 들어온 봄 1악장보다 훨씬 극적이고 트렌디한 초입부였다. 화사한 음색으로 시작부터 무대를 사로잡더니 카덴차에서는 눈을 뗄 수 없는 기량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곧이어 '여름'에서는 특유의 격정적인 에너지로 거센 폭풍우를 그려냈다. 키이우 비루투오지와 합주하는 부분에서는 모두가 소나기처럼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었다. 빗방울을 묘사하는 반복음은 여름의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여름이 끝나고, 이번엔 박지윤이 가을 겨울 연주를 이어갔다. 박지윤은 올해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은 연주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악단 중 하나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종신악장이기도 하다. 그는 여유롭고 경쾌한 연주로 풍성한 가을을 담았다. 특히 그는 수시로 악단과 아이컨택을 하며 함께 호흡했다. 가을에서는 수확의 기쁨에 춤을 추듯 감미로운 선율을 노래하며 풍부하게 표현했다. 겨울 3악장에서는 이내 순식간에 급변하는 겨울바람의 매서움으로 대조를 이뤘다. 양 감독은 이들을 두고 "탁월한 연주력뿐 아니라 익숙한 곡도 재해석을 할 수 있는 연주자를 섭외하려 애썼다"고 말했다.사계가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면 28일 오후에 열린 공연은 '심화 과정'에 속했다. 이날 영국 피아니스트 로데릭 채드윅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새의 카탈로그' 중 일부를 들려줬다. 이 곡은 '새 덕후'로 유명한 메시앙(프랑스 조류학회 회원이기도 했다)이 새소리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다. 메시앙이 프랑스 방방곡곡, 해외를 다니며 새소리를 수집해 작곡한 독창적인 곡으로 곡에 묘사된 새 종류만 해도 77종이다.'흰머리딱새'는 고음역에서 리듬감 넘치는 불협화음이 두드러진다. 참을성 없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정확히 묘사했다고. '올빼미'는 밤에 들리는 공포스러운 올빼미 소리를 담았다. 이외에도 '검은딱새', '유라시안갈대딱새' 등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새소리와 색채 시간의 흐름 등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세밀하게 담았다. 공감각자로 알려진 메시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났다. 오감을 서로 연결해 느낄 수 있는 사람을 공감각자라 한다. 세계적인 테너로 꼽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악보 음표를 색으로 인지한 공감각자로 전해진다.
영국 피아니스트 로데릭 채드윅은 메시앙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만큼 탁월한 해석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작품을 주제로 책을 쓸 정도로 지적인 연주자다. 복잡한 악보를 보기위해 연주할 때는 안경을 착용했고, 마이크를 잡고 곡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덧붙였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끼워 넣었다. 마치 숲속을 거닐다 새를 마주하는 듯한 연출이었다.
난해하고 복잡한 현대곡인 만큼 연주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이제야 끝났다, 참 어렵다'는 의미의 탄식이었다. 전날 친숙한 사계를 듣고는 '탄성'이 나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새에 대한 메시앙의 집념과 독창성은 일반 청중에게는 꽤나 벅찬 체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 감독의 말처럼 대중성과 예술성, 각각이 두드러진 작품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