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걷는 필리핀의 '공주 춤', 남을 믿어야만 출 수 있는 춤

[arte] 문보영의 낯선 세계
필리핀 전화영어 선생님 닉은 왕년에 댄서였다. 난 그의 수업을 좋아하지만 수업을 자주 신청하지는 않는데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이 다 가서 스피킹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입담이 그리워 다시 수업을 신청하게 된다.

닉은 왕년에 댄서였다. 그의 어머니가 댄서였기 때문에 그도 자연스럽게 춤을 접하게 되었다. 닉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필리핀 전통 춤을 추었는데, 춤 이름이 <공주 춤>이란다. -그게 무슨 춤이야?

나는 물었다.

-필리핀의 어느 부족에는 이상한 전통이 있어. 공주는 절대로 바닥을 밝으면 안 돼. 너무 신성한 존재니까. 공주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들려 다녀야 해.-아, 예전에 그것과 관련한 슬픈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혼자서 어디도 갈 수 없잖아. 잔인해.

-응, 근데 집에서는 걸어 다녀.

-아 진짜? 집에도 바닥이 있잖아. -그건 바닥으로 안 쳐. 보통 집을 지을 때 1층을 바닥에서 띄워서 짓거든? 장판은 진짜 바닥이 아닌 거지. 그래서 집에서는 혼자 걸어.

-그럼 물 위에서는?

-배에서도 걸을 수 있어. 그런데 물을 밟는 건 안 돼. 물은 바닥으로 쳐.-아... 그런데 바닥을 밟지 않고 춤을 어떻게 춰?

-공주 춤에서 공주 역을 맡은 댄서는 다른 댄서의 어깨에 올라타거나, 등을 밟고 올라타. 한 사람의 등에서 다른 사람의 등으로, 어깨로 옮겨 다니는 거지. 바닥을 생략하는 거야. 아니면 어딘가에 의지해 허공에 떠 있거나.

-오... 인터레스팅한데? 그럼 너는 무슨 춤을 췄어?

-공주를 바닥에서 띄우는 바로 그 댄서. 공주가 원하는 안무를 할 수 있도록, 바닥을 밟지 않도록 대신 바닥이 되어주는...

-힘들었겠는데?

-그런데 누군가의 바닥이 되는 게 적성에 맞더라고.

-그게 춤이야?

-그럼. 그런데 다른 댄서들이 공주를 업어주고 그러니까 공주는 근육이 없을 것 같지? 댄서 중에 공주 댄서가 제일 힘이 세! 허공에서 중심 잡고 서 있기, 누군가의 어깨 타고 올라가기. 이게 거의 암벽 등반이거든. 허공에서 바닥 없이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등반 춤이네...

-응, 근데 네 말처럼 나도 나중엔 다른 춤을 추고 싶었어, 내가 주인공인. 그래서 파사 도블레, 탱고 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어.
-파트너랑 같이 추는 춤?

-응. 처음 배울 때가 기억나. 첫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에게 두 눈을 가리는 검은 천을 나눠주었어.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서 파트너를 찾을 수 있게. 그건 믿는 연습이었어. 눈을 감아도 상대를 느낄 수 있고 연습. 상대가 내 앞에 있다는 걸 믿는 연습. 그래서 난 이제 어둠 속에서도 믿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