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노인 폄하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마크 아그로닌은 <지금부터 다르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노인의 강점으로 지혜와 회복탄력성, 창의성을 꼽았다. 뇌가 외부 환경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인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해 이런 강점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체력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이 때문에 삶에서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노년에 더 발달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회복탄력성도 더 증진된다. 노년에는 두뇌의 감정 조절 중추인 ‘안와내측 전전두피질’이 두려운 감정을 유발하는 편도체보다 우세해 젊은이보다 충동적인 감정에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와 회복탄력성이 극대화되면 노년에 창의성도 강화된다. 물론 노인 스스로의 유연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아그로닌의 결론은 “나이 든다는 것은 늙는 게 아니라 성장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인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노년에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이 젊은 여성 경영자의 지혜로운 멘토 역할을 해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한비자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 등 노인의 지혜에 대한 숱한 고사성어와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우리 정치권에서 툭하면 노인 폄하 발언이 튀어나온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 선거를 망쳤다. 같은 해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멍청해지고,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아야”라고 했다. 이번엔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이들과) 똑같이 표결하느냐”고 말해 노인 폄하 논란을 불렀다.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아무리 고령층 투표가 민주당에 불리하다고 해도 이런 황당한 인식이 어디 있나. 모두 제대로 늙을 자격이 없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