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울려도 '쾅'…위협받는 '119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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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지키려다…교통사고 해마다 150~170건‘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119차량의 교통사고가 최근 2년 새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환자 이송 또는 출동 중에 일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연간 150~170건에 달하고 있다. 주택가 소음 민원 때문에 출동 시 사이렌 소리를 줄이는 게 사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1일 소방청에 따르면 사고현장 출동과 응급환자 이송 중 발생한 119차량의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111건에서 2021년 173건, 2022년 157건으로 지난 2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특히 환자 이송 때보다 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 지난해 기준 사고 현장으로 출동 중 발생한 사고가 91건, 부상자나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다 발생한 사고가 66건이다. 2021년에도 출동 시 사고가 106건으로 병원이송(67건)보다 많다.119 출동 건수가 늘어나고 있어 관련 교통사고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2015년 321만44건이던 119 출동 건수는 지난해 480만4016건을 기록하며 8년간 약 50% 급증했다.
출동 중 충돌·추돌사고 잇따라
상당수 車방음·주변 소음 탓에
사이렌 못 듣고 사고로 이어져
"소음민원에 소방·구급활동 위축"
일각 '볼륨규제 해제' 목소리도
119차량 교통사고의 상당수는 일반 운전자가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해 발생한 경우다. 지난해 3월 전남 나주에서는 구급차가 출동 중 시내버스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거리 교차로로 진입하려던 버스 운전기사는 왼편에서 사이렌을 켜고 운행 중인 구급차의 존재를 몰랐다. 경찰 조사에서 해당 버스 기사는 “버스 안은 엔진 소음이 매우 심해 바깥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지난 2월에는 경기 평택시 안중읍의 한 도로에서 출동하던 구급차가 일반 차량과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출시된 차량은 내부가 주변 소음을 통제할 만큼 방음 시설이 잘 돼 있다”며 “관련된 사고의 상당수는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한 경우”라고 설명했다.출동 중 사고를 낸 소방관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21년 5월 경기 의정부시에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구급차가 추돌사고로 90도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환자는 두개골을 크게 다쳐 위중한 상태였다. 부상을 당한 구급대원 두 명은 환자를 들것에 싣고 직접 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구급차 운전자인 소방관 한모씨는 “사고 발생 직후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일반 운전자 대다수가 사이렌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많아 소방관이 늘 긴장한 상태로 출동에 임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이렌 볼륨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상 사이렌 소리는 최대 120㏈을 넘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사이렌 소리가 시끄러우니 소음 완화 대책을 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아 최대 볼륨 규정에 한참 못 미친 선에서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서울·경기 등 주거밀집지역이 많은 광역단체 소방서일수록 소음 민원이 많은 편이다. 경기 북부지역 119안전센터에서 근무 중인 한 소방관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사이렌 소리를 줄이고 출동하면 안 되느냐는 불평을 받는데 그때마다 ‘죄송하다’ ‘주의하겠다’며 달래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병삼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동조합 사무처장은 “119차량이 사이렌 소리를 줄이고 운행 시 오히려 사고 발생 확률을 높일 수 있으니 불편하더라도 안전을 위해 양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