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장벽에 막힌 국산 1호 디지털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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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아 바이오헬스부 기자“아마도 당장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지난달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된 디지털 치료제(DTx)와 인공지능(AI) 의료기기 보상 방안에 대한 헬스케어 업계의 반응이다. 헬스케어 혁신 기술에 대해 시장 진입을 간편하게 해주겠다는데도 업계가 시큰둥해하는 건 핵심을 비켜가서다.이번 보상 방안의 골자는 혁신의료 기술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 또는 비급여 여부를 해당 기업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비급여로 신청하면 그만큼 시장 진입이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DTx와 AI 의료기기가 보험에 등재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혁신의료기술 평가’ 절차 곳곳에 지뢰가 숨어 있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1호 DTx를 내놓은 에임메드다. 에임메드의 불면증 DTx ‘솜즈’는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혁신의료기술평가 트랙을 밟는 제품은 연구수행과 임상진료 단계를 거쳐 의료 현장에 적용된다. 그러나 DTx 업계에선 기술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기존 연구 방식을 따르라고 한다고 불만이다.
솜즈는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질병과 관련된 행동교정 등을 받을 수 있게 돕는다. 1주일에 길어야 30분밖에 되지 않는 병원 치료와 다르다.이 때문에 에임메드는 앱을 쓴 환자의 전후 과정을 비교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NECA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약과 가짜 약을 쓰는 환자군을 나눠 비교하는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식약처 허가를 받기 위해 시행한 임상과 똑같은 임상을 다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에임메드뿐 아니다. 기존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기술이 아니라 혁신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출시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혁신의료기술평가 절차 때문에 AI 의료기기 등 신기술이 발목 잡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독일은 우리와 다르다. 신속 등재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1년간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이 기간 제품의 유효성을 입증하면 정식으로 의료수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덕분에 독일에서는 38개의 DTx가 정식 등록돼 사용되고 있다.
업계에선 과거 잣대로 혁신기술을 평가하겠다는 NECA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혁신 의료기기가 설 자리는 없다는 업계의 하소연을 정부는 언제까지 듣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