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세대공감] '시니어 시장'은 없다…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세대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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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산업의 부흥’ ‘시니어 시장의 개화’.
고령화 시대에 맞춰 10여 년 전부터 많은 학자와 컨설턴트가 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실체가 뭔지, 도대체 그 시장은 언제 열리는지 알 수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미 시장은 열려서 엄청난 소비자가 등장했는데 ‘시니어’ ‘실버’라는 단어에 갇힌 ‘젊은 마케터’와 이들을 그저 ‘어르신’ 정도로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그 시장을 못 보고 있는 것이다.진짜 시니어 시장에는 ‘시니어’ ‘실버’라는 단어 자체가 붙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연령이 아니라 ‘코호트’, 즉 해당 연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동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경험이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처음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도시 부산은 전체 연령 대비 5060세대의 인구 비중이 32.9%로 서울(29.3%)보다 높다. 5060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넘어선 것이다. 이런 부산의 5060세대를 대상으로 대홍기획에서 시행한 소비 성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많이 소비한 분야는 건강관리였다. 열 명 중 한 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질병 치료 또는 건강식품 구입이 아니라 ‘관리’를 목적으로 300만원 이상의 케어, 시술, 수술 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맛집 탐방이었다. 전체의 12%가 미쉐린가이드, 블루리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5060세대는 전반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합리적인, 낭비 없는, 간소한, 실속 있는 소비’로 요약된다. 스스로 쌓아온 안목과 이에 대한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도 덜했다.
지금 60대, 70대가 과연 예전의 어르신들과 같은가? 어느 정도 소득과 자산이 있는 이들 세대는 명품을 즐겨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를 위해 ‘조공’을 하고 ‘덕질’을 하며 2030의 ‘덕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지출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노인 빈곤층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이는 복지와 사회 안전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마케터나 기업인들이 고민하는 ‘시장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얘기다.이제 코호트 얘기를 해보자. 그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살며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낸 이들 세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던 이들 세대가 드디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 세대의 다수는 꽤 큰 부를 축적하기도 했고, 여전히 건강하기도 하다. 이런 세대 특성, 이른바 코호트를 이해해야 진짜 시장이 보인다. 현재의 40대 남성은 아마 2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키덜트적 속성’을 간직한 채 10대부터 즐기던 게임, 애니메이션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제품 및 서비스에 돈을 쓸 것이다.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그 나이가 되면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각 세대가 실제 어떤 경험과 기억을 지니고 무엇에 열광하며 돈을 쓸지 그 세대 특유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부터 출발한다면 진정한 시장이 보일 것이다.
최근에는 수명이 길어지는 현상과 맞물려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일터를 지키는 80대, 이른바 ‘옥토제너리언’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고 했던가. 한 가지 명제를 추가하자. 소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소비가 있고, 시장이 열린다.
고승연 <우리가 싸우는 이유: MZ세대는 없다> 저자·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고령화 시대에 맞춰 10여 년 전부터 많은 학자와 컨설턴트가 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실체가 뭔지, 도대체 그 시장은 언제 열리는지 알 수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미 시장은 열려서 엄청난 소비자가 등장했는데 ‘시니어’ ‘실버’라는 단어에 갇힌 ‘젊은 마케터’와 이들을 그저 ‘어르신’ 정도로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그 시장을 못 보고 있는 것이다.진짜 시니어 시장에는 ‘시니어’ ‘실버’라는 단어 자체가 붙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연령이 아니라 ‘코호트’, 즉 해당 연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동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경험이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처음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도시 부산은 전체 연령 대비 5060세대의 인구 비중이 32.9%로 서울(29.3%)보다 높다. 5060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넘어선 것이다. 이런 부산의 5060세대를 대상으로 대홍기획에서 시행한 소비 성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많이 소비한 분야는 건강관리였다. 열 명 중 한 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질병 치료 또는 건강식품 구입이 아니라 ‘관리’를 목적으로 300만원 이상의 케어, 시술, 수술 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맛집 탐방이었다. 전체의 12%가 미쉐린가이드, 블루리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5060세대는 전반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합리적인, 낭비 없는, 간소한, 실속 있는 소비’로 요약된다. 스스로 쌓아온 안목과 이에 대한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도 덜했다.
지금 60대, 70대가 과연 예전의 어르신들과 같은가? 어느 정도 소득과 자산이 있는 이들 세대는 명품을 즐겨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를 위해 ‘조공’을 하고 ‘덕질’을 하며 2030의 ‘덕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지출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노인 빈곤층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이는 복지와 사회 안전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마케터나 기업인들이 고민하는 ‘시장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얘기다.이제 코호트 얘기를 해보자. 그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살며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낸 이들 세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던 이들 세대가 드디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 세대의 다수는 꽤 큰 부를 축적하기도 했고, 여전히 건강하기도 하다. 이런 세대 특성, 이른바 코호트를 이해해야 진짜 시장이 보인다. 현재의 40대 남성은 아마 2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키덜트적 속성’을 간직한 채 10대부터 즐기던 게임, 애니메이션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제품 및 서비스에 돈을 쓸 것이다.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그 나이가 되면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각 세대가 실제 어떤 경험과 기억을 지니고 무엇에 열광하며 돈을 쓸지 그 세대 특유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부터 출발한다면 진정한 시장이 보일 것이다.
최근에는 수명이 길어지는 현상과 맞물려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일터를 지키는 80대, 이른바 ‘옥토제너리언’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고 했던가. 한 가지 명제를 추가하자. 소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소비가 있고, 시장이 열린다.
고승연 <우리가 싸우는 이유: MZ세대는 없다> 저자·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