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거장'의 드넓은 작품세계, 이렇게 따닥따닥 가두나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서
윌리엄 클라인 첫 한국 전시

'현대사진의 아버지' 명작 왔지만
빽빽한 진열 탓에 감동 반감
'안토니아+시몬느+바버샵, 뉴욕' for 보그(1962) Estate of William Klein
1950년대 중반 미국 사진잡지는 요즘의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단 사진이 하나같이 예쁘고 화려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행복했다. 보는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이는 사실 모두 철저하게 연출된 장면이었다. 당시 사진계에서는 이렇게 정교하게 연출한 ‘예쁜 사진’을 좋은 사진으로 쳐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든 두 사람이 있었으니, 윌리엄 클라인(1928~2022)과 로버트 프랭크(1924~2019)였다. 두 사람은 각각 카메라를 차고 거리를 쏘다니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정통 사진 기법도 무시했다.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피사체에 살이 닿을 정도로 밀착하거나 초점이 흔들리는 것도 감수했다.처음에는 이런 파격에 사진계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들처럼 자유분방하게 마음대로 찍는 풍조가 사진계에 널리 퍼졌다. 현대 사진의 시작이었다. 클라인과 프랭크가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클라인의 첫 유고전이자 한국 첫 전시가 지금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열리고 있다. 1950년대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사진과 그림·영화·책 130여점을 통해 클라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뮤지엄한미 관계자는 “2015년부터 계획해 8년만에 성사된 전시”라며 “클라인의 다양한 작품들과 미적 감수성, 인간적 면모를 모두 보여주는 걸 목표로 했다”고 했다.

야심찬 포부에 걸맞게 전시는 무려 8개 섹션으로 나뉜다. 시작은 프랑스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할 때 그렸던 추상화다. 카메라를 향해 총구를 들이댄 소년의 표정 등을 찍은 대표작 ‘뉴욕’ 연작, 파리, 로마, 도쿄 등지에서 촬영한 사진, 추상 사진, 패션 사진과 영화까지 실로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문제는 전시장이 클라인의 넓고 깊은 작품세계를 모두 담기에 너무 좁다는 것이다. 사진 하나하나가 명작이지만 지나치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 관객이 집중력을 유지하며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통로가 협소해 사람이 조금만 몰린다치면 작품을 제대로 보는 것조차 어렵다. 전시를 관람한 한 미술평론가는 “고급 요리가 나왔는데 맛볼 틈도 없이 허겁지겁 뱃속에 욱여넣어야 하는 기분이었다”고 촌평했다.
뮤지엄한미 관계자는 “클라인 재단 측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전시에 모두 담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탓에 전시는 공간과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되고 말았다. 9월 17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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