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한도 위기에 흔들린 미국…신용등급 한 단계 내려갔다 [미 신용등급 강등]

미국의 신용등급 AA+로 강등된 건 1994년 이후 처음
반복되는 부채한도 위기로 거버넌스 신뢰도 추락
2개월 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레이팅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부채 한도 증액으로 인해 재정 적자 폭이 커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미국 재무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피치 레이팅스는 이날 미국의 신용등급(IDRs·장기외화표시발행자등급)을 종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AA+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건 1994년 이후 처음이다.이로써 미국은 네덜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 피치 최고 등급인 AAA 그룹에서 퇴출됐다. 대신 캐나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과 같은 AA+를 부여받게 됐다.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이유는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피치는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3년간 미국의 재정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 채무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피치는 미국의 거버넌스가 AAA 등급을 받은 다른 국가에 비해 악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임박해서야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6월 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과 부채한도 협상을 타결하고 협상안에 서명했다. 부도 예상일(X-데이트)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이었다.피치는 "(미국은) 2025년 1월까지 부채한도를 유예하기로 결정했지만, 재정 및 부채 문제를 포함한 거버넌스는 꾸준히 약화해왔다"며 "부채한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반복되며 재정 관리에 대한 신뢰도가 축소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피치는 지난 5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과 같은 트리플A로 평가하면서 향후 등급을 낮출 수 있는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지정한 지 2개월 만에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이다. 당시 피치는 미국 재정 상태를 두고 "부채한도를 둘러싼 벼랑 끝 전술과 부채 부담 증가로 인해 미국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재정 적자 증가세도 하향 요인으로 꼽혔다. 피치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3%로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해 3.7%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다. 지난 6월 재정 책임 규정에 따라 비(非) 국방 재량 지출을 삭감하기로 결정했지만, 장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경기침체에 대한 전망도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쳤다. 피치는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용 대출의 조건이 강화하게 되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는 소비 둔화로도 이어진다.

미 재무부는 신용등급 하향 소식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이다"라고 비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