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동요 없었지만…"美경제에 큰 경고" [미 신용등급 강등]

뉴욕증시 3대 지수 선물 보합세
"2011 S&P 강등 당시 후폭풍은 없을 것"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1일(현지시간)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서의 미 국채 위상은 깎이게 됐다. 계속된 증시 상승과 고용 시장 호조로 ‘골디락스(고성장 속 물가 안정)’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미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은 장 마감 직후 전해졌다. 선물 시장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과 S&P500, 나스닥100 선물은 1% 이상으로 하락 폭을 키우지 않았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발표 직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이내 반등했다.시장이 2011년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했을 때와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시가 랠리를 지속하고,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2.4%를 기록하는 등 미 경제가 탄탄함을 증명하는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12년 전 잠시 패닉에 빠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용등급 하향이 이자 수준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채 투자자들이 피치의 신용등급 평가 담당자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며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기 보다는 정쟁의 불씨(political football)에 불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루이스트 어드바이저리 서비스의 키스 러너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X(구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미국 경제는 기대 이상으로 강하다”며 “피치의 결정은 기괴하고(bizarre) 터무니없다(inept)”고 지적했다.조 바이든 행정부의 관료들도 앞다퉈 피치의 결정을 비난하고 나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피치의 결정은 자의적이며, 낡은 데이터에 기초했다”며 “피치의 정량분석 모델에 따르면 많은 지표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기였던 2018~2020년 사이에 하락한 뒤 현재 개선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치의 결정은 미국인을 포함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즉 미 경제가 근본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을 뒤집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채 한도 협상과 관련한) 무모한 벼랑 끝 전술과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남발한 결과”라며 공화당에 책임을 돌렸다.
이번 사태가 2011년 S&P의 등급 조정 때만큼의 강력한 후폭풍을 남길지는 두고 봐야 할 전망이다. 1941년 평가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던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자 S&P500지수가 3주도 채 안 돼 17% 폭락했다. 강등 이후 1년 뒤 미국의 차입 비용은 약 13억달러 불어났다.비영리단체‘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의 마크 골드바인 수석 부사장은 “과거와 같은 급격한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드바인 부사장은 “추후 또 한 차례 신용등급이 하락할 땐 미 연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피치의 등급 하향은 미국에 큰 경고 신호”라며 “미국 경제는 강하고, 투자 매력이 높지만, 우리가 현재의 길을 계속 간다면 이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