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도 필요없는 '라텍스 몸매'…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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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스칼렛 요한슨은 다소 억울할 것이다. 출연작이 너무 많고(2023년 현재 62편) 워낙 일찍부터 유명세를 타다 보니(아역 배우 출신이다.) 어느덧 나이가 50을 넘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겨우 40도 안된 나이일 뿐이다. 1984년생이다. 한창중에서도 한창일 때이고 현재의 속도로 볼 때 앞으로의 출연작도 지금까지의 숫자 만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타라는 존재는 모두가 다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 아는 사람, 곧 온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스칼렛 요한슨이 바로 그런 여배우이다. 스칼렛 요한슨을 모르는 자, 간첩이다. 그녀의 출세작은 같은 여성에게서 나왔다. 소피아 코폴라가 만든 2004년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이다. 영어 제목,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Lost in translation)'을 직역하면 ‘통역에서 길을 잃다’ 곧 ‘통역이 잘못되다’이다. 한국어 제목이 매우 영리했던 셈이었는데 실제 영화 내용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낸 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건 아니고 그보다 4년전 개봉됐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의 제목을 흉내 내다가, 그러니까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셈이 된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사랑이 통역이 안된다는 속뜻을 지녔다기 보다는 사랑할 때는 통역이 필요없다는 뜻을 보여주는 내용이어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쓰여지는 말이 됐다. 소피아 코폴라는 그 유명한, 할리우드의 전설 중의 전설인 프랜시스 F. 코폴라 감독(‘대부 1,2,3’ 지옥의 묵시록’)의 딸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소피아 코폴라는 엘레노아 코폴라(‘지옥의 묵시록’의 프로듀서이자 2017년작 ‘파리로 가는 길’의 감독)의 딸이기도 하고 오히려 엄마에게서 영향을 더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세계 최고의 영화인 아버지를 둔 여자 감독이 평소 겪었던 심리적 갈등이 투영된 작품이었고 늘 나이 많은 ‘아저씨’들 사이에서 ‘남성’을 봐왔던 젊은 여성의 묘한 내면이 담겨져 있었는 바, 감독 자신의 그같은 심정을 투영시킨 대상이 바로 스칼렛 요한슨이었다. 두 여자 모두 자신의 나이 이상으로 일찍부터 성숙한 여성이었다. 영화는 은퇴를 앞둔 노년의 한 남자 배우와 20대의 한 여성이 낯선 땅 도쿄에서 만나 미묘한 로맨스를 꽃피우는 얘기이다. 이런 내용인 탓에 영화는 마치 남자 주인공 역의 빌 머레이로 시작해 빌 머레이로 끝나는 것 같지만 스칼렛 요한슨의 캐스팅이야말로 신의 한 수인 작품이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소피아 코폴라의 완벽한 얼터 에고(alternative-ego)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깜짝 놀랐는데 그건 남자 뿐 아니라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특이한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매혹적인 둔부 라인 때문이었다. 영화 속 샬롯, 곧 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인 존(지오바니 리비스)의 작품을 위해 도쿄 한 호텔의 라운지에서 착 달라붙은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뒤도 돌아 누워 있는 포즈를 취한다. 영화의 거의 오프닝으로 사용됐던 이 장면은 당시 스무 살 스칼렛 요한슨이 섹스 심볼의 여배우로 등극해도 모자람이 없음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여성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카메라는 남성의 관음적 시선이 아니라 여성의 질투어린 시선으로 요한슨의 젊은 몸매 ‘뒤태’를 죽 훑으며 탐닉한다. 이 영화는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골든 글로브에서는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스칼렛 요한슨이 이후 ‘붙은 몸매’를 보여 준 것은 주로 ‘라텍스’ 차림으로 대부분 SF를 통해서이다. 그녀를 월드 스타로 대세를 굳히게 한 캐릭터가 바로 MCU(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 중 하나인 ‘어벤져스’이고 요한슨은 블랙 위도우 역으로 매혹적인 캐릭터를 소화한다. 블랙 위도우는 착 달라 붙는 옷을 입는다. 원래 이 역은 로버트 다우니 Jr. 주연의 2010년작 ‘아이언맨2’에서 시작해 확장된 것이다. 당시 블랙 위도우는 아이언 맨이 사랑하는 여자 비서 페퍼포츠(기네스 팰트로)보다 한 수 아래 캐릭터였다. 그러나 이 블랙 위도우는 2021년에는 단독 영화인 ‘블랙 위도우’로까지 등극한다. 블랙 위도우 캐릭터는 아이언 맨2 이후 10년간 5편의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다가 2019년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사망하기까지 큰 인기를 모은다. 스칼렛 요한슨이 배역을 고르는 데 있어 천리안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라고들 얘기하지만 솔직히 운이 좋은 셈이었으며 역시 소 뒷걸음질과 쥐를 잡는 것과 연속선상에 있는 애기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라텍스 몸매가 가장 안좋았던 영화는 2017년작 ‘공각 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때였다. 첫 번째 딸을 낳고 두번 째 남편과 이혼했다가 현재의 세번 째 남편인 콜린 조스트와 만나던 때이다. 개인사가 좀 복잡한 때였을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수준 높은 출연작은 차고 넘친다. 대체로 20대 초반에 좋은 작품들이 몰려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전인 1999년, 코엔 형제 감독의 필름 누아르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에서 17살의 요한슨은 깜찍한 인형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 한 컷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 이상한 흑백영화는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요한슨만큼은 남았다. 스타가 되는 과정은 이렇게 늘 짧고 강렬한 것이다.2003년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은 17세기 네덜란드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무덤에서 튀어 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평론가로서(흥! 평론가는 무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한슨의 영화는 오히려 졸작으로 평가받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2006년작 ‘블랙 달리아’이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2011년에 만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 역할을 해서 오히려 너무 좋았다. 요한슨이 얼마나 낮은 데로 임하는 것도 잘하는 배우인지, 그 대중주의의 철학을 보여 준 작품이다. 그녀는 ‘인디펜던트 스피릿’마저 매우 강한 것으로 유명한데 2013년에 출연한 두 편의 독립영화 ‘언더 더 스킨’과 ‘그녀’는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그녀’는 특히 AI 목소리 연기였다. 노아 바움벡의 수작으로 2019년 넥플릭스 영화였던 ‘결혼 이야기’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상대역인 애덤 드라이버와 십여분에 가까운 부부싸움 연기, 그 엄청난 분량의 말다툼 대사 연기로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녀의 두 번의 이혼 과정이 그랬을까. 뭐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알 바는 스칼렛 요한슨이 다음 영화로 어떤 작품을 골랐느냐는 것이다. 그중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감독작인 ‘내 어머니의 결혼식’이 관심을 끈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연배우였다. 스칼렛 요한슨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20년쯤 후에 그녀 나이 환갑 언저리 쯤에 스칼렛 요한슨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 소리를 지금 듣기에는 현재의 나이가 너무 젊다.
요한슨이라는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덴마크 계이다. 원래 대로의 발음이라면 요한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영어 발음은 조핸슨이다. 한국에서는 두 나라 발음이 섞였다. 요한손이든 조핸슨이든 그녀는 무조건 믿고 보는 영화의 여자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아주 예쁜 여배우는 아니다. 사람들을 아주 행복하게 해주는 여배우이다. 자 당신은 어떤 쪽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