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려낸 고교 동문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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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요즘은 동창끼리 만남도 달리기 모임이나 독서 모임 등 반 쯤은 목적을 정해놓고 만나기도 한다. 확실히 모여서 술만 마시고 떠드는 자리보다 건전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전의 등산 모임이나 술 모임과 크게 달라졌을까? 고급 차를 몰고 오거나 명품백을 들고 나오는 친구가 시선을 끌기도 하고, 가끔 뉴페이스가 등장하면 현재의 직업이 예상과 맞았느니 다르다느니 하는 얘기가 뒤에서 오간다. 외모나 성격이 튀었던 친구가 빛이 바래지기도 하고, 지적이고 똑똑했던 친구가 뜻밖에 세일즈에서 ‘통찰’을 발휘하기도 한다.서른 중반을 돌이켜보면, 십대는 그래도 가능성이 넘치고 희망적인 시기처럼 느껴진다. 이십 년 뒤에도 여전히 출근길 전철에서 옆 사람에 닿지 않으려고 몸을 요리조리 빼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조금만 되짚어 보면, 그 시절 친구와 학교는 처음 만나는 사회적 공간이었다.철이 들 무렵인 고등학생 때는 본격적인 좌절을 맞이할 시기이기도 하다. 나만 빼고 썩 괜찮아 보이는 친구들, 외모든 성격이든 재능이든 뭐 하나는 갖고 있는 것 같은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 속 ‘쓰쿠루’도 알록달록한 개성 넘치는 친구들 속에서 자신만은 아무 색이 없는 무채색이라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민음사
하지만 다섯 손가락처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 보이던 다섯 친구들 속에서 쓰쿠루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는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남자 셋, 여자 둘 이성 친구들 간의 긴장이 흐르는 모임이지만, 본능을 억누르면서까지 다섯 명은 완벽한 사교클럽을 유지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십대 시절이었다.
일 하나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쓰쿠루는 일본어로 ‘만들다(作)’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철도역을 만들고 싶었던 쓰쿠루는 평온했던 고향 생활을 뒤로 하고 다섯 중에 혼자만 도쿄의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완벽했던 나고야 시절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네 명의 친구로부터 이별 통고를 들으면서 안온한 세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누구도 아무런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마치 항해하는 배의 갑판에서 밤바다 속으로 갑자기 혼자만 떠밀려 빠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어.”사람이 충격을 받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대개는 마음속에 묻어버리게 된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쓰쿠루는 철도역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어 누군가에겐 쓸모가 있을 일을 착실히 해낸다. 대합실을 고치고 화장실을 보수한다. 함께 지내던 누군가가 무덤덤한 관계에 지쳐서 떠나가면, 쓰쿠루는 최대 환승역인 신주쿠역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뭔가를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놓고 싶은 충동도, 공허함도 덮어둘 수 있다.
함께 살아가려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밖에
서른다섯의 쓰쿠루는 묻혀 있던 진실을 헤집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고향을 찾는다. 한 명씩 만나는 과정이 이 소설 방식의 고교 동창회다. 그때의 날선 칼날 같은 이별 통보 이후 쓰쿠루는 누군가와 진득한 만남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거리를 유지하는 인간관계가 되풀이되었고, 그 순환을 깨려면…. 오늘을 잘 살아보려고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다.
나의 한 친구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꾸 바뀌다 보니,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고 했다. 불친절하게 대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친절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가 언제 직장을 나가도 자신이 타격 받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게 되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어서 직장 생활에서 대단한 친밀함을 기대하진 않지만,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건 자신의 그런 방식이 문제였을까, 하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상실의 시대』 후속편 같은 이 성장소설에서 하루키는 현대인들의 디폴트값인 ‘불친절하지는 않으나 “색채 없는 무정함”’이 우리를 내파시킨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상처를 덧내지 않기 위해 마련해둔 세련된 무정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