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바닥에 드러누운 '대파'? ... 북서울미술관의 특별한 '10살 생일잔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0주년 기념전 'SeMA 앤솔러지 : 열 개의 주문'
기슬기, 현재전시, 2023.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 북동부 지역은 오랜기간 '문화 불모지'였다. 주변에 이렇다할 공연장이나 전시장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곳 주민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려면 먼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2013년 9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문을 열었을 때, 이 지역 주민들이 환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북서울미술관이 열살 맞아 준비한 '생일잔치'를 미리 공개했다.
10주년 기념전 'SeMA(Seoul Museum of Art) 앤솔러지 : 열 개의 주문' 전에는 회화부터 드로잉, 사운드, 텍스트, 설치미술, 조각까지 형식의 제한을 두지 않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관객을 만난다.10주년 기념전에 걸맞게 참여 작가도 10명으로 끊었다. 구기정, 권혜원, 기슬기, 김상진, 노은주, 박경률, 박성준, 전병구, 박이소 미술 작가 아홉 명과 시인 최재원이다. 이중 세상을 떠난 박이소 작가를 뺀 9명이 이번 전시를 위해 신작을 들고 나왔다.
권혜원, 초록색 자기로 된 건축물, 2023.

10주년 생일잔치 기념전인 만큼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작품들 위주로 걸었다. 권혜원 작가의 '초록색 자개로 된 건축물'은 미술관의 미화실, 바람이 지나가게끔 만들어 놓은 풍동실 등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숨은 미술관의 모습을 SF 영화로 재구성했다.

특히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10년간 미술관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문화공간이 아닌 '직장'으로서의 미술관은 어떤가라는 호기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슬기, 지난 전시와 다가올 전시를 위한 기념비, 2023.

기슬기 작가는 북서울미술관이 지난 10년간 진행했던 전시 포스터를 전부 모아 대형 벽면에 붙인 작품을 내놨다. 과거의 전시를 모아 놓고 '현재 전시'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붙였다. 그 앞에는 10주년 기념전시 포스터를 계속 이어붙여 하나의 기념비처럼 만든 작품 '지난 전시와 다가올 전시를 위한 기념비'가 서 있다.

하지만 1층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강탈한 작품은 따로 있었다. '만남의 광장'이라는 제목을 가진 박경률 작가의 작품이다. 거울, 밧줄, 비닐봉지, 심지어 대파 한 단이 바닥에 드러누운 듯 널려 있다. 얼핏 보면 정리정돈 안 된 누군가의 자취방을 연상케 한다.
박경률, 만남의 광장, 2023.

관람객은 이 물건들 사이사이를 피해 지나가야 하는데, 조금만 부주의해도 거울을 깨뜨리거나 밧줄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이날도 비스듬히 누워 있던 거울이 '쨍그랑'하며 바닥으로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박 작가는 이러한 훼손 또한 작품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내 앞을 지나간 누군가의 흔적을 작품 훼손이 아닌 새로운 작품 창조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그는 "결국 '작품의 진가는 보는 사람의 몫'이란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뮤지컬, 심포지엄 등 여러 행사가 열린다. 9월에는 서울시향과 함께 10주년 기념 축하공연도 연다. 이 때 방문하면 전시와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