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19)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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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의 상징 유엔공원, 11개국 전몰장병 2천320명 영면 부산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다. 1950년 6·25 전쟁 때 유엔의 깃발 아래 뭉친 해외 참전용사 중 이 땅에서 전사한 분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5일 부산연구원에 따르면 전쟁 당시 22개국 국가의 참전용사들이 한국으로 파병돼 낯선 땅, 낯선 국민들을 위해 3년간 전쟁을 치렀다.
16개 국가는 전투지원단을, 6개 국가는 의료지원단을 파병했다. 끔찍했던 전쟁으로 전체 유엔군 희생자는 모두 4만896명에 이른다.
유엔군 사령부는 1951년 전사자들의 매장을 위해 지금의 유엔기념공원 자리에 최초의 유엔 묘지를 조성했다.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돼 있던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됐다. 전쟁 중 이곳에는 1만2천여 명의 유해가 안장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많은 유해가 고국으로 이장되며 7월 기준 이곳에는 11개 국가 2천320구의 유해가 남아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55년 11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적으로 기증했다. 첫 이름은 유엔기념 '묘지'로 붙여졌지만 2001년 3월 우리 정부가 이곳이 국민들에게 친숙한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의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유엔군 묘지를 조성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관련된 것이다.
1952년 12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긴 뒤 부산을 방문해 조성 중이던 유엔묘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잡혔는데, 미군은 한겨울이던 당시 이곳에 푸른 잔디가 깔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미군 사업을 발주받아 회사를 키우던 정 회장은 겨울에 파란 잎을 틔우는 낙동강 변 보리를 옮겨와 이곳을 단 5일 만에 '녹색 바다'로 만들어 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직원이 "이 추운 겨울에 잔디를 어디서 구합니까"라고 하자 정 회장이 "이봐 해봤어? 한번 해보자고" 말을 하며 이를 해냈다고 전해진다.
부산시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 속에도 유엔묘지 조성과 관련한 피란민의 기억들이 나온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유엔묘지를 조성에 참여했다는 김모씨는 "시신의 군표를 보고 신원을 확인해 부검한 뒤 묻었다"면서 "햇볕에 (시신을) 말렸다가 지퍼가 있는 큰 백에 넣어서 묻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또 다른 김모씨도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죽으면 군인들이 시신을 엠블런스에 실어 유엔로를 빙 돌아 유엔기념공원으로 들어갔다"면서 "유엔 기념공원을 만들 때 서풍이 부는 날이면 시체를 말리는 악취가 마을에까지 풍겼다"고 말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이 위태로웠던 순간 한국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한국으로 달려왔다"면서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다음 세대에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5일 부산연구원에 따르면 전쟁 당시 22개국 국가의 참전용사들이 한국으로 파병돼 낯선 땅, 낯선 국민들을 위해 3년간 전쟁을 치렀다.
16개 국가는 전투지원단을, 6개 국가는 의료지원단을 파병했다. 끔찍했던 전쟁으로 전체 유엔군 희생자는 모두 4만896명에 이른다.
유엔군 사령부는 1951년 전사자들의 매장을 위해 지금의 유엔기념공원 자리에 최초의 유엔 묘지를 조성했다.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돼 있던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됐다. 전쟁 중 이곳에는 1만2천여 명의 유해가 안장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많은 유해가 고국으로 이장되며 7월 기준 이곳에는 11개 국가 2천320구의 유해가 남아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55년 11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적으로 기증했다. 첫 이름은 유엔기념 '묘지'로 붙여졌지만 2001년 3월 우리 정부가 이곳이 국민들에게 친숙한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의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유엔군 묘지를 조성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관련된 것이다.
1952년 12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긴 뒤 부산을 방문해 조성 중이던 유엔묘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잡혔는데, 미군은 한겨울이던 당시 이곳에 푸른 잔디가 깔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미군 사업을 발주받아 회사를 키우던 정 회장은 겨울에 파란 잎을 틔우는 낙동강 변 보리를 옮겨와 이곳을 단 5일 만에 '녹색 바다'로 만들어 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직원이 "이 추운 겨울에 잔디를 어디서 구합니까"라고 하자 정 회장이 "이봐 해봤어? 한번 해보자고" 말을 하며 이를 해냈다고 전해진다.
부산시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 속에도 유엔묘지 조성과 관련한 피란민의 기억들이 나온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유엔묘지를 조성에 참여했다는 김모씨는 "시신의 군표를 보고 신원을 확인해 부검한 뒤 묻었다"면서 "햇볕에 (시신을) 말렸다가 지퍼가 있는 큰 백에 넣어서 묻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또 다른 김모씨도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죽으면 군인들이 시신을 엠블런스에 실어 유엔로를 빙 돌아 유엔기념공원으로 들어갔다"면서 "유엔 기념공원을 만들 때 서풍이 부는 날이면 시체를 말리는 악취가 마을에까지 풍겼다"고 말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이 위태로웠던 순간 한국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한국으로 달려왔다"면서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다음 세대에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