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투자하세요" [그래서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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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수석심사역
한경 긱스(Geeks)가 [그래서 투자했다]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안준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수석이 부동산 금융 플랫폼 '그래이집' 운영사 브릭베이스에 투자한 이야기를 전합니다.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이루고 싶은 목표 1위는 누가 뭐라 해도 '내집 마련'일 테다.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내집마련의 중요성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자라 왔다. 또 성인이 된 이후엔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내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부의 격차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몇백만원의 신용대출은 수백 번 고민하지만, 수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은 별 부담 없이 '덜컥' 결정한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그런 존재다. 숫자로 확인하면 더욱 명확해지는데, 한국은행에서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국내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무려 815조원이다. 그 어떤 시장과도 비교불가한 수준이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두 배에 이를 정도다.
문제는 부동산이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데 있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가계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4.2로 전 세계에서 홍콩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 이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8.7)이나 뉴욕(7.1)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중위소득 가구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4.2년을 꼬박 다 모아야 겨우 서울에서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때까지 주택가격이 멈춰있으란 보장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은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투자대안을 선택했다. 지난 몇 년간 크립토 광풍이 몰아쳤고, 각종 조각투자 및 고위험 파생상품이 성행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만약 당시 부동산 시세 상승에 대한 위험을 안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간접투자하는 법
임동균 브릭베이스 대표를 처음 만나 사업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브릭베이스팀은 우리가 사고 싶은 집에 간접투자가 가능한 금융상품을 기획했다. 단순히 시세측정이 어려운 상업용 부동산이나 고위험 빌딩에 소액투자하는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고 싶은 우량 아파트에 투자할 수 있는 개념을 플랫폼에 구현했다.투자자들은 ‘그래이집’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압구정현대, 아크로리버파크 등 국내 부동산 시세를 주도하는 대장주급 아파트에 여력이 되는 투자금 범위 내에서 투자할 수 있다.
투자에 대한 수익은 기본이자와 만기이자로 나뉘어 지급된다. 상품의 만기까지는 은행예금보다 높은 기본이자가 지급되고, 만기 시에는 부동산 시세상승에 따른 추가 수익을 만기이자로 지급받는다. 설령 부동산 경기에 따라 시세 상승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은행예금보다 높은 수준의 기본금리를 투자 기간 동안 확정적으로 수령할 수 있다. 반대로 대출수요자(부동산 소유주)는 1금융권의 주담대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투자자와 대출수요자 모두에게 효용가치가 명확한 설명이지만, 중요한 것은 디테일에 있듯이 심사역 입장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가 중요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은행이 모방할 수 없는 비용 구조와 리스크 분산을 통한 정교한 금리 설계에 있었다.
시중 은행의 경우 많은 오프라인 영업점과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판관비 규모가 매우 크며 BIS 비율 준수를 위한 자본비용 등 여러 제약 사항이 존재한다. 또 차주의 대출상환 문제 발생 시 책임의 주체이기도 해서 은행의 주담대 금리에는 이런 부분들이 신용·리스크 프리미엄, 원가비용 등의 항목으로 계상될 수밖에 없다. 은행의 주요 수입원은 수신과 여신의 금리 차이, 즉 예대마진에서 나오고 위에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예대마진의 폭을 200bp 미만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브릭베이스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들었다.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하고 이를 대출 수요자와 투자자에게 분산시켜 이용자들이 충분한 효용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금리 수준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도록, 누구나 선망하는 대장주급 아파트면서 LTV 50% 미만 상품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다.금융 상품의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와의 신뢰관계 구축에 있다. 과거 여러 조각투자나 상업빌딩 등의 투자상품들이 초기에만 반짝하고 결국 스케일업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투자자 신뢰의 본질은 금융상품 그 자체에서 나온다.
서울의 아파트 시세가 단기간에 50% 이상 떨어져서 차주가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생길까?
우선, 역사적으로 봐도 서울의 대장주급 아파트가 단기간에 50% 이상 하락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워낙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성격이다. KB에서 제공하는 우리나라 시세총액 50위 아파트에 모든 기간의 데이터를 각 단지별로 정규분포화한 뒤 시세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여러 지표들로 검증해봤다. 결론은 '이 모델은 반드시 작동한다'였다.
브릭베이스팀은 여기에다 자체 신용평가모델을 통해 차주의 신용도를 크로스체크해서 리스크를 더욱 낮췄고, 검증을 하면 할수록 시장을 꿰뚫어 보고 있는 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부에 대한 암묵적인 기준선은 내집마련에 있고, 브릭베이스팀은 이런 군중의 투자 심리를 정확히 이해했다.
'제로 투 원' 탄생할 적기
팀이 뭉치게된 시점도 너무나 중요했다. 과거 몇 년간 고위험 P2P 상품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크립토, 가치평가도 어려운 상업용 빌딩, 미술품 조각투자 등 자극적인 금융투자 상품들로 인해 대중의 피해가 커지면서 피로도가 많이 쌓였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온투업법 제정, 조각투자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핀테크산업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었다.규제만으로 시대를 이길 수 없듯이, 최근 기조를 바꿔 개인 투자자의 투자한도를 상향하고 기관투자도 허용하는 등 개선의 움직임을 신호탄으로 건강한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조금씩 문이 열리고 있다. ‘그래이집’이 추구하는 금융상품의 성격과 업의 본질이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만큼 지금이 바로 '제로 투 원'이 탄생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브릭베이스는 3명의 공동 창업자가 서울대 재학시절 IFS라는 금융학회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각자 필드에서 경력을 쌓다가 임동균 대표의 제안으로 뭉치게 됐다. 임 대표는 금융권(소시에테제네럴, KB국민은행)과 매쉬코리아의 공동창업자로서, 조진혁 부대표는 딜로이트와 삼성전자(필자의 30년 지기와 회사 동기라 자연스럽게 레퍼런스 체크가 됐다)에서, 신인호 이사는 카카오뱅크와 쿠팡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았다.
‘그래이집’은 현재 금융위원회의 최종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올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필자가 성공의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은, 심지어 아직 서비스가 출시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브릭베이스처럼 '존재 이유'가 고객으로부터 명확히 정의되는 팀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업의 목표가 부동산 인플레이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는 임동균 대표의 말처럼, 브릭베이스팀이 가진 믿음이 자극적인 투자상품들로 지친 투자자들에게 단비가 되길 바란다. 안준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수석심사역성균관대에서 시스템경영공학을 전공한 뒤 KAIST 디지털금융 MBA를 거쳤다. 베인앤컴퍼니, 포스코, 이랜드그룹 등에 몸담았다. 이랜드그룹에서는 벤처투자팀을 만들고 CVC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페인포인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시장을 새롭게 정의하는 플랫폼, 테크 분야의 창업팀에 관심이 많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