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 첫해, 사료값 폭등했지만 ‘낙농가’ 한 발 양보해 원유가격 결정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원유가격 결정시 생산비 반영률 훨씬 낮아져
젖소사육두수 감소에 따른 우유생산량 감소세 올해도 이어질 전망
지난 7월 27일, ‘용도별 원유 기본가격 조정 협상 소위원회’ 제11차 회의에서 낙농가·유업계가 올해 원유기본가격을 L당 음용유 88원·가공유 87원으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매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88원 껑충 뛴 원유 가격 우유 1L 3000원 넘기나’, ‘1리터 흰 우유 제품 가격 3000원 넘길 듯’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반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낙농가들의 입장을 다룬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낙농가들의 상황은 매우 녹록지 않은데 말이다. 통계상에 보이는 수많은 빨간불들은 우리 낙농의 위기를 고스란히 반증하고 있다. 사료 가격, 각종 기자재, 장비비용 상승 등에 따라 최근 2년 사이 많은 농가들이 폐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원인은 생산비 상승이다. 젖소용 배합사료 가격은 2021년 대비 2022년 22.9% 상승했고 연간 마리당 평균 순수익은 37.2% 감소한 152만9,000원이었다. 특히 전체 낙농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사육두수 50두 미만 소규모 낙농가의 경우 2022년 마리당 연간 순수익이 무려 99.9%나 감소했는데, 액수로는 1,000원으로 사실상 0에 가까워졌다.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올해부터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시행됐다.

소비시장 상황과 생산비를 함께 고려해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하에서는 우유 소비시장이 급격히 나빠지면 생산비가 상승하더라고 원유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 단, 올해는 ’21년 대비 ’22년 소비시장에 큰 변화가 없어 생산비 상승분의 60~90%만을 원유가격에 반영해 69~104/L원 범위에서 협상이 진행됐으며, 그 범위 내에서 음용유 88/L원을 올리기로 타결했다.

작년이었다면 낙농가 생산비 변동분의 90~110%를 반영해 원유가격이 104~127/L원 올라야 하지만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생산비 반영률이 훨씬 낮아진 것이다.또한 우리나라는 해외와 달리 생산비가 1년 늦게 원유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다. 해외는 생산비나 소비 상황 등이 원유가격에 신속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작년도에 이미 미국과 유럽은 원유가격이 55%, 37% 상승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상승한 생산비를 올해 원유가격에 반영하는 상황이므로 농가가 1년 이상 상승분을 감내한 사실을 고려하면 88원의 인상폭은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유업계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한 발 양보한 결정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유 남아도는데 왜 값을 올리냐’며 ‘원유가격연동제’를 들먹이는 보도를 퍼뜨린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이미 폐지됐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원유 생산량은 정말 과잉인 상태일까. 생명체인 젖소에서 우유를 얻는 낙농업은 공산품과 달리 단기적으로 생산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급을 위해 농가별 쿼터를 정해 계획생산을 하는 업종이다.

특히 계절에 따라 생산량에 편차가 발생하는데, 실제 ’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온화한 기상 여건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여 원유가 과잉되었을 때 낙농가와 유업체는 합의를 통해 쿼터를 감축해 운영한 바 있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전국의 쿼터는 220만 톤이었으나 원유 생산량은 198만 톤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젖소관측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유생산량은 전년동기(498천톤) 대비 3% 감소한 483천톤으로 나타나 우유생산량 감소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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