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단지 울타리는 낮추고 사다리는 높이자

이상훈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투자하려다 접었습니다.” 의욕적으로 해보려던 사업이 산업단지 입주업종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던 사장님의 씁쓸한 목소리가 생생하다. “파격적인 급여복지를 도입해도 젊은이들이 와 보고선 낡고 불편한 곳이라며 입사를 주저하네요.” “민간이 투자하기엔 규제 울타리가 너무 많아요.” 두 달 전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전국 20여 개 산단을 찾았다. 현장의 목소리는 사연만 다를 뿐 하나였다. ‘기업하기 좋은 산업단지’를 만들어달란 것이다.

산단이 기업을 위해 조성된 곳인데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기업인을 만나고 현장을 찾을수록 그 목소리에 쉽게 공감됐다. 산단은 제조업과 수출기지로서 굳건한 한국 경제의 성장판이었다. 울산, 구로, 구미, 창원, 여수에서 출발해 오늘날엔 전국 1274곳에 달한다. 숱한 경제위기 때마다 재도약의 발판이 된 것도 산단이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서 현재와 같은 산단 경쟁력은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현실이다.신산업을 담지 못하고 융복합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되지 못했다. 혁신과 도전을 하기에 미흡한 환경에 투자도 점차 위축될까 걱정이다. 조성 당시 기반시설 그대로 ‘공업단지’에 멈춰 있는 곳도 부지기수다. 산단이란 울타리 안에 또 오래된 규제로 둘러싸여 있어 ‘외딴섬’이 돼 온 건 아닐까. 이젠 그 인식과 틀을 새롭게 할 때가 됐다.

우선 그간 산단을 규정해 온 제도가 앞으로의 혁신에도 필요한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하기 좋고 나아가 기업 혁신을 이끄는 촉매제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과 민간이 쉽게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디지털산단이 좋은 사례다. 외환위기 이후 공동화에 직면했던 옛 구로공단을 살리려고 정부가 먼저 규제를 완화해 변화 여건을 조성했다. 이에 기업과 민간이 호응했고 섬유봉제 중심의 경공업단지에서 오늘날 1만2000개사, 158개 지식산업센터로 가득 찬 벤처밸리로 ‘천지개벽’한 것이다.

국가 경제에서 갖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산단의 혁신은 곧 한국 경제의 혁신이다. 이에 산단을 디지털·저탄소화하고 안전한 혁신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산단에 놓인 오랜 울타리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고쳐야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산단 킬러 규제 혁파를 위해 산단 관리제도 개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제도가 더 이상 산단을 가두고 억제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는 사다리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