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워홀의 절친이자 파트너…'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최근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미국 뉴욕의 한 스튜디오를 8년간 임차했다는 소식에 미술계의 시선이 쏠렸다. 졸리가 자신의 브랜드 ‘아틀리에 졸리’ 론칭을 위해 빌린 스튜디오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와 앤디 워홀이 생전에 함께 살았던 곳이어서다. 고작 만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바스키아가 눈을 감은 곳이기도 하다.

바스키아에게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붙는다. ‘검은 피카소’ ‘천재 낙서화가’ ‘자유와 저항의 예술가’…. 그의 인생은 짧았지만,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예술은 여전히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196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미술관에 다니면서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스키아가 ‘스타’가 된 데는 워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1982년 한 갤러리스트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곧바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둘은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1985년 뉴욕 토니 샤프라지 갤러리에서 공동 전시회를 열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7년 워홀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바스키아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결국 바스키아는 1988년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숨을 거뒀다. 그가 8년간 남긴 작품은 3000점에 달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