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100곳 인터뷰"…또다시 창업에 나선 두 남자 [긱스]

수아랩 출신들이 딥블루닷으로 다시 뭉쳤습니다. 두 번째 도전은 역시 다릅니다. 처음부터 미국 기업용(B2B) 소프트웨어(SaaS)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문제 정의부터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까지 차별화된 팀의 역량이 돋보입니다. 미국 상장을 목표로 하는 딥블루닷의 이동희 최고경영자와 윤관우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이동희 딥블루닷 대표(왼쪽)와 윤관우 최고기술책임자가 11일 성남시 수정구 '판교 창업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솔 기자
미국 기업에 성공적으로 매각된 수아랩 초기 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고객 피드백 분석 솔루션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린 딥블루닷이다. 11일 성남시 수정구 판교창업존에서 만난 이동희 딥블루닷 대표는 "수아랩 때도 딥러닝 AI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던 초창기에 비즈니스 모델(BM)을 만들어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며 "생성 AI 초기이다 보니 다시 한번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수아랩 초기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였다"고 말했다.

머신비전 소프트웨어 개발사 수아랩은 2019년 미국 코그넥스에 2300억원 규모로 매각됐다. 기술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 중에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수아랩에서 사업이사를 지낸 이 대표는 회사 매각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클라우드 플레어에서 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시장을 경험한 그는 직접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 길로 윤관우 전 수아랩 최고기술책임자(CTO)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이었다. 이 대표는 "이번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B2B SaaS를 만들어보자"며 "다시 창업하면 재밌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윤관우 CTO 역시 단번에 '또다시 해보면 너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윤 CTO는 "스타트업이란 게 문제를 푸는 과정의 연속"이라며 "수아랩 때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 대표의 연락을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고 했다. 그렇게 수아랩에 이어 딥블루닷의 CTO를 맡았다.

수아랩 초기 멤버들이 하나둘씩 의기투합했다. 수아랩 1호 연구원이었던 금종수 AI 엔지니어도 합류했다. 2022년 말까지 지금의 딥블루닷 9명 팀이 만들어졌다. 현재 개발팀은 윤 CTO를 포함해 6명이고, 이동희 대표를 포함한 비즈니스 담당은 3명이다.

YC에서 배운 세 가지

수아랩 사업이사 출신으로 미국 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시장에 도전한 이동희 딥블루닷 대표가 11일 성남시 수정구 판교창업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솔 기자
딥블루닷은 처음부터 미국 B2B SaaS 시장을 공략했다. 글로벌 최대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로부터 초기 시드 투자를 받고 멘토링을 받는 '배치 프로그램'을 교두보로 삼은 이유다. 미국에서 B2B SaaS 시장의 터를 먼저 닦아놓은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가 엔젤투자자로 참여하고, 지난 5월 글로벌 AI 프로젝트에 다수 투자한 소프트뱅크벤처스 주도로 35억원의 시드투자를 받은 것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다.

딥블루닷 팀원 9명은 에어비앤비에서 먹고 자며 올해 1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23 W 배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YC 배치 프로그램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문제 정의를 잘해야 한다'는 점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이 대표는 "스타트업이 풀어야 하는 문제가 여러 가지인데 YC는 고객에게 진짜 급한 문제 즉, '헤어 온 파이어 프라블럼'을 찾아야 한다고 계속 주입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을 먼저 만들지 말고 창업자를 '셀링'하는 것도 YC에서 배운 점이다. 이 대표는 "YC에선 고작 4주밖에 안 된 제품을 사주길 기대하는 것은 굉장히 게으른 것이라고 가르친다"며 "고객이 느끼는 문제를 팀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풀다 보면 나중에 좋은 제품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기업의 현금흐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딥블루닷 팀원들은 연초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로 투자금 전액이 위험할 뻔했던 상황에서 사흘 밤낮으로 대책을 마련하며 현금흐름 관리의 중요성을 호되게 깨달았다.


가장 시급한 고객의 문제를 풀어내라

딥블루닷은 문제 중심으로 접근한다. 수아랩 때부터 일하던 방식이다. AI 기술 연구개발(R&D)에 1~2년을 쓰는 게 아니라, AI가 딱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만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는 제품화로 해결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기술에서 문제를 찾는 게 아니라 문제에서 기술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한다"며 "이번 YC 배치프로그램에 선정된 것도 생성 AI의 사용 사례를 만들어낸 이유가 컸다"고 말했다.

딥블루닷이 개발한 AI 기반 고객 피드백 분석 솔루션 '싱클리'도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YC 배치프로그램으로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2~5개사씩 총 100개 사스 회사를 인터뷰하면서 생성 AI의 활용사례로 '싱클리' 모델을 도출했다.

딥블루닷이 가설한 문제를 설정하고, 각 회사에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가장 많은 공통분모를 찾았다.

당초 딥블루닷이 가설한 문제와 100개 기업을 다 인터뷰한 후 만들어진 싱클리 모델은 매우 달랐다. 딥블루닷은 고객 중심 디자인을 위해 디자인과 개발한 제품의 다른 부분을 AI 기반으로 찾아주는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가설을 설정했다. 하지만 인터뷰 결과 회사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한 문제는 고객들이 남기는 피드백을 직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다. 각사마다 당장 제품 개발이 급하다 보니, 고객 피드백을 분석하는 솔루션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대표는 "현재 생성 AI가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곳이 콘텐츠 창작 영역이다 보니 의외로 분석과 정리 쪽에서 적용사례가 많지 않다"며 "싱클리는 고객 피드백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뽑아내는 생성 AI 활용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응용력이 곧 기술력

머신비전 소프트웨어 개발사 수아랩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윤관우 딥블루닷 CTO가 11일 성남시 수정구 판교 창업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솔 기자
딥블루닷의 강점은 원천기술이 아니라 응용력에 있다. 딥블루닷은 오픈AI 등 전반적인 AI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풀기 위한 최적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낸다.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솔루션의 처리 속도를 가른다.

윤 CTO는 "스타트업마다 문제를 풀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알고리즘을 구현해보고 가설을 검증하고 다시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며 "결국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응용력이 팀의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딥블루닷은 싱클리를 개발하기 위해 고객들이 남기는 수십 만개 피드백에서 공통된 주제를 찾는 최적의 '토픽모델링'을 만들어냈다. 또 토픽별로 재무적 임팩트를 예측하는 기술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이탈 위험이 있는 고객과 추가 구매력이 있는 고객 데이터를 연결해 해당 토픽을 실행하지 않았을 때 놓칠 수 있는 매출 기회 등을 계산해 낸다.

그 결과 싱클리는 이메일, 화상 미팅, 채널톡 등 다양한 채널에서 들어오는 정성적 데이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즉각적으로 시각화해 고객 경험 확장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다. 기업은 싱클리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채널의 고객 피드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 개별 피드백 반영 시 예상 효과와 제품 개발 및 서비스 개선에 대한 인사이트도 받을 수 있다.

팀원 채용 시에도 문제해결 능력을 최우선 자질로 꼽는다. 윤 CTO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가설 설립, 알고리즘 구현, 가설검증, 알고리즘 수정의 과정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100개 기업을 인터뷰한 비결

100개 기업 인터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절반 정도는 딥블루닷의 시드 투자사인 YC와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50개 이상 기업은 링크드인에서 관련된 사람들 이메일을 수집해 '콜드 메일'을 보내 성사된 인터뷰다.

이 대표는 "콜드 메일 100개를 보내면 2개 정도 회신이 온다"며 "거의 1000개 메일을 보내 50개 기업 인터뷰가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콜드 메일을 보내는 요령은 '명확한 이유'와 '너희 회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안녕하세요. 나는 어디 누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데 좀 도와주세요'라고 보내면 100% 답이 안 온다"며 "'네가 최근에 어떤 얘기를 했던데 우리가 마침 이런 걸 하고 있어서, 너의 경험이 우리에게 이런 점에서 도움을 줄 것 같으니 15분만 달라'고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15분 줌 미팅의 목표는 30분 전화 미팅 '티켓'을 사기 위한 것"이라며 "30분은 너무 길고 10분은 인사하다 보면 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중요한 얘기는 30분 전화 미팅에서 이뤄지고, 거기서 잘 되면 '커피챗' 대면 미팅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이렇게 인터뷰한 기업들은 딥블루닷 고객사로 이어졌다. 현재 미국 사스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20여곳이 싱클리 고객사로, 해외 고객사 비중이 90% 이상이다.


고객이 제품과 사랑에 빠지게 하라

생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객 피드백 분석 솔루션 '싱클리'를 개발한 딥블루닷의 이동희 대표(왼쪽)와 윤관우 CTO가 11일 성남시 수정구 '판교 창업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솔 기자
싱클리는 고객 의견을 데이터 기반으로 우선순위에 반영하도록 이끈다는 측면에서 '제품 주도 성장' 트렌드를 겨냥하고 있다. "고객이 세일즈맨을 만나지 않고도 손쉽게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해 고객이 제품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이 이 대표가 말하는 제품 주도 성장이다.

미국 B2B 사스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제품 주도 성장은 국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기업들은 고객 유치, 리텐션(고객 유지) 및 업셀링(상위모델 판매)을 달성하기 위해 제품 주도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세일즈와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특히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세일즈 관행이 완전히 제품 주도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제품 주도 성장 트렌드로 인해 세일즈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과거엔 회사와 제품을 소개하고 이걸 썼을 때 어떤 도움이 될지를 탑다운으로 설명했다면, 제품 주도 성장 트렌드에선 제품을 더 잘 사용하게 하는 컨설턴트이자, 무료 버전을 쓰다가 유료 전환을 하도록 촉진하는 역할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성남=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