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주지훈은 MSG파, 나는 사골육수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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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공식작전' 이민준 역 배우 하정우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에서 실제로 벌어진 한국 외교관 납치사건을 극화한 작품. 하정우는 5년째 중동과를 벗어나지 못하는 흙수저 외교관 이민준 역을 맡았다. 이민준은 납치된 외교관의 암호가 담긴 전화를 처음 받은 후 '미주'나 '유럽' 발령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레바논으로 떠나 구출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공항 도착 직후, 그가 운반하는 몸값을 노리는 경찰 경비대의 추격과 총알 세례를 받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는 이민준을 하정우는 생생하게 연기해냈다. 극의 배경이 레바논인 만큼 당시의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수개월 동안 촬영을 이어갔던 하정우는 "힘들었다는 것보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다"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집과 사람이 그리웠어요. 저와 (주)지훈이, 둘밖에 없었어요. 초반엔 서로 숙소가 멀기도 했고요. 한국처럼 편의 시설이 좋진 않았거든요. 전기를 조금만 써도 두꺼비 집이 내려갔고. 집은 좋았어요. 절벽에 있는 곳이었는데, 나름 타운하우스 느낌이었죠. 또 돼지고기를 안 팔아서, 스팸 이런 걸 싸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먼저 도미니카에서 촬영하고 있어서 부탁했더니 업소용 스팸을 10박스를 보내줘서 4개월 내내 먹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김성훈 감독과 재회를 반가워했다. 김성훈 감독은 모로코 촬영을 거치면서 "하정우가 아내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말했을 정도로 친분을 뽐내자, 하정우는 "징글징글하게 같이 생활했다"면서 웃었다. 촬영지와 숙소가 멀다 보니 촬영을 마친 후에도 촬영지에 남아있는 경우들이 많았고, "다 같이 움직이고 다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의 다양한 성격을 알게 됐다"는 것. 그러면서 "감독님은 좌욕을 좋아하시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비타민을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챙겨 드신다"면서 TMI(Too Much Information)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주지훈에 대해서도 "사석에서도 관계를 많이 쌓아왔고, 서로의 연기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며 "같이 연기하면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이 됐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각자의 입맛에 대해서는 "주지훈 씨는 MSG파, 저는 사골육수파"라며 거리를 두며 너스레를 떨었다.
"주지훈 씨는 매운 걸 좋아해요. 어디서 보지도 못했던 김치 시즈닝 이런 걸 구해와서 넣더라고요. 마라탕, 마라맛 이런 걸 좋아하고요. 저는 신라면 정도의 매운맛도 못 먹어요. 곰탕에 소금도 안 넣는데, 그 친구는 청양고추를 넣어 먹더라고요.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요. 지훈이는 다운타운, 저는 좀 심심하죠."
하정우가 가장 '아찔'했던 촬영으로 꼽던 것은 들개들에게 쫓기는 장면이었다. 하정우는 역설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웠다"고 표현하면서 "개들이 훈련이 잘돼 있었는데, 눈빛을 보면 물리면 큰일 날 거 같았다. 이미 저랑 리허설하면서 더 흥분된 상태였고, 그때 필사적으로 뛰었던 게 실제 제 마음이었다. 촬영팀은 보호장비가 있었지만, 저는 갖춰 입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평택의 밤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해 폭소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계에서는 하정우가 고생한 만큼 흥행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 하정우는 "'허삼관'도 고생했고, 'PMC:더 벙커'도 고생했는데"라고 자폭하며 쑥스러워하면서도 "관객분들이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거 같고, 김성훈 감독님은 저의 그런 모습을 '터널' 때도 그렇고 잘 뽑아서 재료로 잘 쓰시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고생'하기 위해 "부상 방지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전했다."예전엔 고생하는 장면을 찍어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마사지를 받지 않으면 아프니까. '좀 쉽지 않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오버하지 않아요. 술을 먹을 때에도 예전에는 '내일은 몰라' 하면서 마셨는데, 요즘은 내일을 모른척했다가는 큰일 날 상황이 발생해 절제하죠."
"'허삼관'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시나리오를 3번이나 고쳐 작업했어요. 그런데 '이걸 내가 찍기를 원하나' 싶더라고요. 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았죠. '롤러코스터'를 찍을 때처럼 투박하더라도 그때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골프를 소재로 한 건, 제가 골프를 배운 지 얼마 안 됐어요. 전 골프가 당구 같은 줄 알았어요. 2020년에 지인이 제가 걷는 걸 좋아하니 '라운딩할 때 걸으라'는 말에 참여했는데, 산속을 걷는 그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라운딩을 갈 때 아는 사람들끼리 가는데 골프장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이런 입체감, 이중성은 뭘까 싶었어요. 그래서 골프 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