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화재시잖아요!”

[arte] 이자람의 소리
사진 = 숨고
사실, 인간문화재라는 말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나 또한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무형문화재임을 자랑할 때 “우리 선생님은 인간문화재에요!”라고 짧게 말하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우리 선생님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적벽가 기능보유자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어쨌든 이 긴 명칭을 속칭하는 것이, ‘인간문화재’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재보호법이 있다. 건물이나 도자기 같은 물건에 부여하는 유형문화재, 전통적인 기술과 예술, 문화를 대대로 물려오는 무형문화재, 그리고 기념물 및 민속 자료가 그것이며, 이들을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문화재보호법의 목적이 있다. 이 법률은 1962년 1월에 제정되었고, 이 후 여러 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져왔다. 판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 그러니까 무형문화재 중에 다섯번째로 지정된 장르다. 국가무형문화재의 첫번째는 매년 종각에서 열리는 종묘제례에 쓰이는 음악, 종묘제례악이다. 두번째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전승되는 탈놀음인 양주별산대놀이, 세번째는 조선시대의 유랑연예인 집단이었던 남사당놀이, 네번째는 갓을 만드는 기술인 갓일이다.

이 후로도 나전칠기를 만드는 기술인 나전장,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는 강강술래, 각 지역의 농악이나 탈춤, 굿 등등 아름다운 전통 문화 155건(2023년 7월 문화재청 등록 기준)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국가무형문화재 1~5호 중 갓일을 제외한 종묘제례악, 양주별산대놀이, 남사당놀이, 판소리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인류무형유산이기도 하다. 나라 안팎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문화 유산들이란 얘기다.
이자람
그렇다면 기능보유자가 되면 뭐가 좋을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번다는 기준을 ‘의식주 걱정 않는 것’이라고 하면, 국가에서 보유자에게 주는 연금이나 수업료만으론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으나 전수자 수요가 없어 명맥이 끊기고, 스스로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기사가 넘친다.) 뭐, 아주 긍정적인 사례를 가정해 인기 종목의 보유자가 제자 수가 많아 수업료를 많이 받거나 공연 요청이 쇄도해 공연수익이 많다면 꽤 넉넉할 수도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전통예술은 그렇게 수요가 많지 않다. 인기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명예가 어마어마 할까? 글쎄, 때와 장소에 따라 격차가 크다. 국가가 인정하고 세계가 인정한 소리라 할지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이의 귀에는 그 소리가 곧 낯설고 불편한 소음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의 판소리 클립에 달린 댓글 중에도 판소리 왜 아직도 안 사라지냐, 소리만 지르고 시끄러워 죽겠다 라는 글을 발 견 할 수 있다.

물론 이 댓글을 사례로 들기에는 그 내용과 수준이 악질적이고 무례한 사례라 좀 특수하긴 하지만,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는 이만 아는 것’이 아주 강한 장르가 전통예술이라는 것이다. 어디든 안그렇겠느냐마는 기술의 역사가 유구하고 그 깊이가 깊을 수록 아는 이만 아는 현상은 더욱 클 것이며 그로 인해 향유자와 모르는 자들의 간극도 넓은 세계이다.

무형문화재, 과연 그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지키는 것이 문화재보호법이며, 사람들은 이 법과 관련한 사항을 뭉뚱그린 ‘인간문화재’라는 단어에 대해 환상과 낯섦을 동반한 존경심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넉넉한 부나 대단한 명예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만큼, 어떠한 종목의 기능보유자들은 가난하고 쓸쓸하게 그 맥을 지키고 있다. 기능보유자도 제각각이라 한데 모아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었던 기능보유자들을 보고 느낀 바를 말해보자면, 기능보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돈이나 명예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운명처럼 만나 그 가치를 잘 물려받은 기술을 그대로 간직하다가 나누어 줄 후대에게 가능한 고스란히 그 기술과 정신을 이어주는 것, 그 지난한 행위와 그에 따른 시간과 노력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일 것이다.

그럼 판소리꾼이 기능보유자가 되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 2017년 개정된 문화재청훈령을 참고하여 조금은 쉽게 설명해보겠다. 판소리에 입문하여 기능보유자가 되는 길은 거칠게 일반전승자-이수자-전승교육자-기능보유자로 나눌 수 있다.

판소리를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반전승자’가 된다. 일반전승자도 한달 배우고 만 사람, 6개월 동안 한달에 한번씩 띄엄띄엄 배운 사람, 12개월 넘게 주 1회씩 계속 해서 배운 사람 5년을 배웠으나 사실상 배움의 횟수는 50여회도 못 미치는 사람 등 천차만별일 것 아닌가?법적으로는 일반전승자를 ‘이수자나 전승교육자가 아닌자로 무형문화재의 기능과 예능을 실연할 수 있는 사람’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좀 어렵다. 하여 이 정의에 따른, 그를 보장할 수 있는 규정으로 나열 된 것이 ‘국내 전통문화대학교에서 무형문화재 관련 분야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 무형문화재 관련 분야의 전국 규모 대회에서 입상실적이 있는 사람, 동 내용의 실기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서 5년 이상 강사의 경력이 있는 사람’ 이다. 여러분도 보유자나 전승교육자를 찾아가 교육을 받고 일정 규모의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학위를 취득하면 일반전승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전승자는 보유자나 전수교육자에게 일정기간 교육을 받아 이수자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게된다. 보유자가 지정한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배운 것을 발표하는 공신력 있는 자리를 가진 뒤 심사를 통해 이수증을 수여 받게 된다. 이수자는 보유자나 전승교육사와 같은 전수교육의 의무가 없다. 대신 문화재청은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우수이수자를 선정하여 지원을 하거나 ‘이수자뎐’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만들어 무대를 세워준다거나 하는 지원 사업들로 이수자들의 활동을 장려한다.

전승교육사는 문화재청이 심사위원을 모집하여 일정의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이수증을 발급 받은 후 5년 이상 전승활동을 수행한 자여야 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전승교육사부터는 자신이 물려받는 기술을 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수자나 전승교육자들은 신청을 통해 보유자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심사는 여러 조사와 평가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 전문가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조사단이 꾸려진다. 이를 통해 우리가 흔히 국가보물, 즉 인간문화재라고 일컫는 국가지정 기능보유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기능보유자가 되면 대부분의 경우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능보유자의 자격을 유지한다. 나는 동편제<적벽가>와 동초제<춘향가>의 이수자다. 강산제<심청가>, 동초제<춘향가>와 <수궁가>, 동편제<적벽가>와 <흥보가>를 전수받았으며 전체 전수기간은 33년이다. 돌아가신 은희진 선생님께 <심청가>와 <춘향가>를, 오정숙 선생님께 <춘향가>와 <수궁가>를, 현 기능보유자이신 송순섭 선생님께 <적벽가>와 <흥보가>를 받았다. 아마 한동안은 근 15년간 해왔던 것처럼 전승이나 교육보다는 전통판소리의 보존과 창작에 힘을 쓴 활동에 주력 할 것이기 때문에 전승교육자가 되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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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전통 예술가들이 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멈추지 않는지 종종 궁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왜 큰 돈 만질 확률이 굉장히 희박한 전통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일까. 각자가 자기 인생에서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를 당해 여기까지 온걸까? 돌아갈 길이 너무 길어 그냥 오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일까? 그 세세한 이유들은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때때로 지치고 외로울 텐데, 나 여기 있다고 손 흔들고 싶다. 고집있게 원하는 예술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의 전통 예술가들, 당신들을 동경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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