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소나타에서 ‘안단테 소스테누토’를 음미하다

[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 10분 동안 길게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음악을 공연에 앞서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실연으로 마주한 피아노 음색은 귀를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곧장 떨어졌다. 객석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악보를 보며, 또 누군가는 그저 무대의 단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 이경숙이 하콘의 오래된 피아노에 앉아 묵묵히 독백을 담아내고 있었다. 장장 10시간 동안 펼쳐진 2023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무대의 마지막 연주였다.

한 작곡가를 선택해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 전반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온 줄라이 페스티벌은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다른 음악 축제와 차별화되는데, 거기엔 독특한 피날레 무대도 한몫을 한다. 2020년 피날레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13시간 동안 릴레이로 연주했고, 2021년에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2022년에는 바르톡의 피아노 솔로 작품 전곡에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까지 얹었으니 여하간 줄라이 페스티벌의 피날레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것이다.2023년의 대미로는 2020년의 베토벤 때처럼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선택했다. 3년 전에 13시간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어 10시간 공연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그때와는 다르게 평일인 월요일 공연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 확신을 증명하듯 하콘과 우리의 여름 축제를 지지해 준 관객들, 슈베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공연 1시간 전부터 줄을 서 대기하는 광경,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들이 다시 객석으로 들어와 함께 공연을 보는 모습,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관객이 모이며 사람으로 꽉 채워진 공간,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30여 명의 관객… 많은 것이 2020년 베토벤 하우스가 되었던 그날과 오버랩 되었다.
그러나 단 하나 달랐던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몇 곱절의 공부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베토벤과 달리 후기 작품(16번~21번)만이 주로 무대에 올려지는 만큼 이전의 번호들은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참고자료 찾기도 쉽지 않았고 전체 소나타에 대한 악장 정보가 통일되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어떤 작품은 다른 도이치 번호를 가진 작품을 가져와 악장을 구성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연주자에 따라 악장 배열을 달리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미완성인 악장은 연주를 하지 않기도, 오리지널을 따라 미완성인 채로 연주하기도, 임의로 완성된 버전을 연주하기도 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헤맨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연주자 별로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 연주 예상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관객들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프로그램 노트를 작성했다.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난관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것이 줄라이 페스티벌이 갖는 본질이라는 점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방법만 조금씩 달랐을 뿐 페스티벌은 언제나 공연을 만드는 우리에게 먼저 공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전기를 읽으며 포스터 디자인의 힌트를 얻었고, 작곡가의 생을 관통하는 작품들을 분석했으며, 생애의 주요 시점들과 작품을 연결해 연표를 만들던 모든 작업은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했던 일들이다. 올해는 슈베르트가 남긴 1천여 곡이 넘는 작품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주요 작품을 추려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1곡의 피아노 소나타 한 곡 한 곡을 세세히 들여다보았던 것을 마지막으로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관객과 연주자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어서 오라고, 이곳 슈베르트의 하우스로, 21세기의 슈베르티아데로.
다시, 안단테 소스테누토. 음 하나하나를 충분히 눌러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음악 용어다. 7월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슈베르트의 작품 113곡을 꾹꾹 눌러 담아내었던 이번 여름을 포함해 줄라이 페스티벌 전체를 관통하는 지시어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천천히, 깊이 있게, 긴 호흡으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객석 한 켠에서 페스티벌의 의미를 더듬어보고 있을 때 21번 피아노 소나타의 마지막 화음이 울렸다. 피아니스트가 미소 짓자 숨죽여 듣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2023년의 줄라이 페스티벌을 완성한 마지막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또한 피날레의 10시간을, 7월의 매일을 함께한 모든 관객과 연주자들을 위한 갈채였다. 무더위에 애쓴 스태프들을 격려하는 소리였다.

몇 번의 커튼콜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던 피날레의 여운을 뒤로한 채 2024년의 슈만과 2025년의 스트라빈스키를 위한 걸음에 시동을 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시어가 쓰여 있다.

“안단테 소스테누토 Andante sosten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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