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싼 PB상품, 우리도 만들겠다"…식품업체, 유통사에 도전장 [하수정의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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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몰 전용제품으로 승부유통업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체브랜드(PB·Private Brand) 상품을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자사몰에 100만명 이상의 회원을 끌어모았거나 충성 고객을 보유한 식품기업들이 스스로 유통의 역할을 시도하기 위해 자사몰 전용 제품 개발에 나선 것이다. 제판(제조·판매) 전쟁이 이곳저곳에서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제조사들의 이 같은 흐름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에 대항하는 식품사들
○인삼공사·hy·풀무원 등 도전
KGC인삼공사는 지난 7일 자사몰인 정관장몰에서 첫 PB상품을 출시했다. ‘정몰초이스’라는 브랜드를 달고 정관장몰 안에서만 판매하는 이 상품은 피부미용 등에 활용되는 항산화 물질인 글루타치온 제품이다.시중에서 판매하는 글루타치온 제품 대비 성분 함량을 높이고 가격은 4분의 1수준으로 싸게 책정했다. KGC인삼공사는 글루타치온을 시작으로 앞으로 PB 제품군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PB상품은 대형마트나 백화점, 온라인 플랫폼 등 유통사들이 직접 기획한 자체브랜드 상품을 말한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쿠팡의 ‘곰곰’, 컬리의 ‘KF365’ 등이 대표적이다.PB상품은 마케팅 ·광고· 유통비용 등을 줄일 수 있어, 제조사가 만들어 전체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일반제조브랜드(NB·National Brand)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주문자위탁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등을 활용해 대규모 시설 투자 없이 변화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KGC인삼공사가 PB시장에 도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100만명에 달하는 정관장몰 회원 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국내 건강기능식품 온라인 판매 비중이 2019년 40%에서 지난해에는 60%까지 확대됐다”며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선 획기적으로 가격을 낮춘 PB상품으로 자사몰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자사몰 경쟁력 제고”
자사몰에 공을 들여온 hy도 올 들어 PB에 진출했다. 상반기에 자사몰 프레딧에서 피부유산균 화장품, 유기농 두유를 PB 형태로 출시했다. 지난 5월 프레딧 전용으로 내놓은 ‘NK7714 하이퍼 부스팅 앰플’은 hy가 유산균을 배양한 발효물로 10여년간 연구한 야심작이다.hy 관계자는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허 유산균 화장품을 PB로 출시한 이유는 자사몰 안에 고객들을 머물게 하는 ‘락인’ 효과와 충성도 제고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며 “출시 2주만에 판매량이 1만개를 돌파해 PB제품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hy 자사몰 프레딧의 회원 수는 지난 달 기준 160만명이다.
특히 전국 골목을 누비는 1만여명의 프레시매니저들을 보유한 hy는 오프라인과 연계해 PB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PB제품을 구매하면 프레시매니저가 집 앞까지 배송해준다. 기존에 프레시매니저들을 통해 야쿠르트 등을 정기 배송받는 고객들은 한꺼번에 제품을 받을 수 있다.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자사몰 회원으로 확보한 풀무원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잇따라 건강식 PB를 내놓고 있다. 유기농 즉석밥, 죽, 탕 등 4종의 제품을 자사몰인 샵풀무원에서 올가 브랜드로 판매한다.
제조사들의 자사몰 전용 제품 출시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일부 식품업체는 연내 자사몰 회원을 상대로 판매하는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NB제품은 유통채널 가격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사몰에서만 싸게 판매하기 어렵다”며 “일정 자사몰 회원 수를 확보하고 있는 제조사들은 유통사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자사몰 전용 제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