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인도 "LK-99 초전도체 아니야…게임 끝"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라고 주장한 물질 ‘LK-99’에 대해 미국과 중국, 인도 연구진이 잇따라 “초전도체가 아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 매릴랜드대 응축물질이론센터(CMTC)는 8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우리는 이제 게임이 끝났다고 믿는다. LK-99는 실온(또는 심지어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초전도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CMTC는 “그것은 매우 높은 저항성을 갖는 불량 품질의 재료다”라며 “끝났다. 진실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데이터가 말해 준다”고 밝혔다.CMTC는 또 LK-99에서 보이는 ‘반자성’ 역시 전혀 흥미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LK-99를 구성하는 구리, 납, 인 등의 성분 자체들이 이미 반자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LK-99가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아닌 별도의 신물질일 가능성도 배제한 것이다.

CMTC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위상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 협업중 인 곳으로 초전도 현상을 꾸준히 연구해 온 기관이다.
또 인도 국립물리연구소(NPL) 역시 전날 13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온라인 아카이브에 공개하고 “LK-99를 공개된 방식으로 재현했으나 초전도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중국 베이징대 국제양자물질센터(ICQM)는 10페이지 분량 논문을 공개하며 “마이스너 효과 또는 0 저항의 성격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국내 과학계도 LK-99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상온초전도 검증위원회(검증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창영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단장(서울대 교수)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현재까지 공개된 영상과 데이터에서는 ‘마이스너 효과와 플럭스 피닝’ 현상(사진)이 관측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이스너 효과와 플럭스 피닝은 초전도체가 자력에 의해 공중에 떠오르고, 그 상태로 안정적으로 고정되는 현상이다. 초전도체로 자기부상 열차를 구현하는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공개된 영상에서 LK-99는 자석 위에 떠 있다. 하지만 항상 일부가 자석에 붙어 있는 상태다. LK-99는 위치가 옮겨짐에 따라 잠시 전체가 자석에 완전히 붙기도 한다. 또 움직인 뒤에는 진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초전도체의 자기부상과는 다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은 논문에서 이것이 완벽한 샘플이 아니라서 일부만 공중 부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검증위 측은 자석과 LK-99 시료 사이에 작용하는 다른 힘이 있을 수 있어 정확히 마이스너 효과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증위는 또 논문에 나와 있는 데이터 역시 일반적인 초전도체가 보여주는 그래프와 차이가 있다고 했다. 김 부단장은 “그래프는 반자성(diamagnetism)만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초전도체가 아니어도 반자성 특성을 가진 물질은 많이 있다”고 했다.검증위는 이날 기준 LK-99 재현 작업이 약 30% 이뤄졌다고 했다. 전날 공식적으로 재현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힌 만큼 이르면 다음주 초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재현 연구에는 성균관대 양자물질초전도연구단, 고려대 초전도재료 및 응용연구실, 서울대 복합물질상태연구단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 부단장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국내외 연구기관의 검증 결과를 지켜보고자 했지만 지난 수일간 진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검증되지 않은 다른 주장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며 검증위를 구성한 배경을 설명했다.

상온 초전도체는 과학계의 오랜 꿈 중 하나다. 초전도 현상은 금속 등에서 전기저항이 어느 온도 아래에서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 저항을 없애면 저항이 소모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어 자기부상열차나 전력망 등에 사용처가 무궁무진하지만, 현재는 극저온이나 초고압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어 활용도가 낮다.

앞서 지난달 22일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은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상온과 대기압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며 두 개의 논문을 공개했다. 아카이브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빠르게 공개하기 위한 사이트로,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는 구조다. 저자로는 이 대표와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김현탁 교수 등이 포함됐다.연구진은 논문에서 납과 인회석 결정 구조인 LK-99를 개발했으며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 온도가 섭씨 127도(400K) 이하라고 주장했다. 이는 온도가 127도 이하일 때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