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남자를 죽인 여자 살인마...거장의 '뮤즈'가 된 유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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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납량특집-그림편]기원전 어느 날 밤, 이스라엘의 도시 베툴리아에 살고 있는 과부 유디트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밖을 내다보니 이웃집은 불타고 있고, 남자건 여자건 피범벅을 한 채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베툴리아를 침공한 것이다. 모두들 적의 눈을 피해 숨기에 급급했지만, 유디트는 달랐다. 그는 손에 칼을 쥐고 결심했다. "적장을 죽여서 고향을 지켜야겠다."
구약성서 속 전쟁영웅 유디트와 소름돋는 그림들
유디트는 '미인계'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했다. 홀로페르네스가 자신의 옆에서 술에 취해 잠들자, 그는 하녀의 품 속에 숨긴 칼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벴다. 칼날에 짓눌린 홀레페르네스는 깨어나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눈 앞에 다가온 죽음에 굴복할 수밖에.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전쟁 영웅' 유디트의 일화는 수많은 화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바로크 시대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도 그 중 하나였다. 그의 대표작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홀로페르네스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극적인 순간을 담았다.
눈에 띄는 건 유디트와 하녀의 포즈다. 둘은 다부진 팔로 홀로페르네스를 완벽히 제압한다.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엔 젠틸레스키의 개인적 경험도 반영돼있다. 그는 10대 때 아버지가 붙여준 미술 강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재판부는 젠틸레스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전 순결을 지켰다는 점을 증명하라"면서 그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혔다.
젠틸레스키는 이런 복수심과 분노를 그림에 반영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거침없이 베는 유디트에도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한다.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그림을 사는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어.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될 거야."젠틸레스키와 같은 시기, 바로크 시대를 휩쓸었던 거장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도 유디트를 '뮤즈'로 삼았다. 그가 캔버스에 담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모습은 젠틸레스키의 그림보다 더 극적이다. 흰 이불엔 선혈이 낭자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홀로페르네스의 표정도 더욱 사실적이다. 칼을 쥐고 있는 유디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고, 주름진 얼굴의 하녀는 그 옆에서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다.
카라바조가 목을 베는 장면을 이렇게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가 유디트 그림을 그리고 있던 1599년, 로마에선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이름의 여성이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공개 처형당하는 일이 있었다. 카라바조는 실제 처형장에 가서 첸치가 참수당하는 장면을 실제 목격했고, 그 모습을 참고해 이 그림을 그렸다.유디트가 잔인한 모습으로만 그려진 건 아니다.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유디트를 관능적인 팜므파탈로 그려냈다. 클림트 작품 속 유디트는 상반신을 노출한 채 반쯤 감은 눈으로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금빛 장신구과 배경까지 보면 마치 귀족 여인의 초상화 같다.하지만 오른쪽 밑부분을 보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유디트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건 잘려있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다. 적장을 유혹할 만큼 매혹적인 팜므파탈, 그 여성에게 매혹된 남성의 잔인한 최후를 한 폭의 그림 안에 담아낸 것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