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사 다툼만 벌이다 파산한 미국 기업 '옐로'

파산 불과 한 달 전 임금인상 요구
화물 운송비 급등으로 피해 커져

이현일 국제부 기자
1만2000여 대의 화물 트럭을 거느린 미국 물류기업 옐로가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직장을 잃은 3만여 명 가운데 2만2000명을 조합원으로 둔 노동조합 상급단체 인터내셔널팀스터스브러더스의 션 오브라이언 회장은 “오늘은 노동자와 미국 화물업계에 슬픈 날”이라면서도 “오늘 소식은 안타깝지만 놀랍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놀라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오브라이언 회장은 그동안 자금난에 몰린 옐로 경영진의 간곡한 요청에도 일체 협상을 거부하고, 파산하기 불과 한 달 전까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도했다. 지난 6월엔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듯이 자신의 트위터에 ‘옐로 1924~2023’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공동묘지 비석 합성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대런 호킨스 옐로 최고경영자는 파산 소식을 알리며 “구조조정을 중단시킨 팀스터스 지도부가 회사를 폐업으로 몰고 갔다”고 비난했다.반면 팀스터스는 성명을 통해 “무능한 경영진이 뻔뻔하게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옐로의 자금난은 경영진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옐로는 2000년대 경쟁사 인수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고전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결정타를 맞아 정부로부터 7억달러(약 9200억원)를 지원받고 부도를 모면했다. 그러나 최근 대출 이자가 급증하고 기름값도 올라 영업이 불가능한 지경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99년 역사를 지닌 옐로의 파산 소식을 전하며 “이자율과 연료비 상승, 화물운수 시장의 치열한 경쟁 압박이 추악한 노사 다툼과 충돌했다”고 평가했다.

노사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지와 별개로 옐로의 파산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실업자가 된 3만 명의 직원이다. 미국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확보한 옐로 지분 30% 역시 휴지 조각이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옐로가 영업을 중단한 지난주부터 화물 운송비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아마존과 홈디포 등 고객사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팀스터스는 옐로 파산의 여파는 외면한 채 물류기업 UPS 경영진과의 새로운 싸움에 돌입했다. 이번엔 33만 명의 UPS 조합원을 동원해 미국 택배물류의 25%를 마비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