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어쩌다 15톤짜리 콩요리 '훔무스'를 만들었나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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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만나는 유로메나모든 계층에서 골고루 사랑받는 대중 음식은 각 나라의 상징과도 같다. 유명한 음식은 그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지난 2020년 중국에서 한국의 김치를 쓰촨식 채소절임 '파오차이(泡菜)'와 동일하게 표기하며 논란이 불거졌듯, 음식의 '원조 논쟁'은 국제 관계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요소다.
라영순·이정민 외 지음
책과함께
360쪽│2만2000원
<식탁에서 만나는 유로메나>는 음식을 매개로 유로메나 지역의 사회적 변화를 설명한 책이다. 유로메나는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를 뜻하는 메나(MENA)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통합유럽연구회와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가 기획한 이번 책에는 16명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저술에 참여했다. 예로부터 유럽과 메나는 전쟁과 화해를 반복하며 상호 문명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역사부터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탄생, 오늘날 유럽 내 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 지역의 밥상은 복잡한 역사와 맞물려 진화해왔다.
때로 음식은 지역 내 갈등의 산물이었다. 대표적인 요리가 삶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훔무스'다. 맛이 좋으면서도 값이 싸고 영양소가 풍부해 중동 지역 밥상에 단골로 오른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벌인 '원조 논쟁'이 실제 전쟁만큼이나 치열하게 진행된 이유다.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에 한도는 없었다. 2007년 이스라엘이 400㎏에 달하는 대형 훔무스를 만들자, 2년 뒤 레바논은 2000㎏ 훔무스를 선보이며 기네스북에 올렸다. 양국이 번갈아 가며 더 큰 요리를 내놓은 결과 이스라엘이 15t짜리 훔무스를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유로메나의 요리는 포용과 통합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서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에서 주로 먹는 '쿠스쿠스'는 곡물을 쪄서 만든 '쿠스쿠스 파스타'를 채소와 함께 곁들인 음식이다. 예로부터 마을에 잔치가 있을 때 모여서 나누어 먹는 '공유의 요리'였다.
쿠스쿠스는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 등 4개국이 힘을 합쳐 2019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들 국가는 서사하라 영토 분쟁을 겪는 등 서로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상태였다. 정치 현안과 관계없이 지역 사람들이 음식으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해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쿠스쿠스는 오늘날 '프랑스인이 가장 선호하는 아랍 음식'으로도 꼽힌다.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통치가 끝나며 본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이를 전파하며 인기를 끌었다. 유럽 내 무슬림 난민 문제가 화두가 된 요즘, 책은 "식탁에 커다란 쿠스쿠스를 올려놓고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서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화합하는 유로메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