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소소한 통찰]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파업

20년마다 반복된 美 배우조합 파업
기술 발전 따른 사회적 갈등 늘 고민

박재항 글로벌브랜드&트렌드 대표·이화여대 겸임교수
미국 영화배우조합(SAG)이 지난달 14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한 달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란 두 영화의 개봉 행사가 타격을 받았다. 영화 개봉 시점에 꼭 이뤄지는 영화관에서의 무대 인사와 관련 인터뷰가 줄줄이 취소됐다. 개봉 1주일 전에 파업이 시작돼 그때까지 사전 마케팅을 충실히 진행한 두 작품은 실제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바벤하이머’라는 두 영화 제목을 조합한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가을 시장을 노린 다른 작품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작가조합에서 먼저 불거진 이번 파업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배분 문제가 첫 번째다. 다음은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기술 등의 사용으로 배우와 스태프의 영역이 침범되거나 그들의 이미지가 남용될 부분에 대한 대책이다. 두 사안을 두고 배우, 작가 같은 스태프와 제작자 간 이견이 발생했다. 그런데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이번 사태를 알리는 기사 대부분이 1980년에 일어난 같은 미국 배우조합의 파업을 언급했다.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당시에도 출현했고, 그게 파업의 원인이 됐다. 영화관을 쇠망의 길로 몰아넣는다는 비디오와 케이블TV 같은 유료 텔레비전 채널 등이 바로 주인공이었다. 제작사와 공중파 방송국에서 유통 창구를 독점하며 이익 배분도 좌지우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창구가 생겼으니 새로운 분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배우를 비롯한 제작 스태프는 주장했다. 그 파업으로 당시 할리우드의 대다수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됐으며 수많은 영화의 개봉이 미뤄졌다.

20년 더 거슬러 올라가 1960년의 파업도 소환됐다. 텔레비전 산업이 비교적 초창기던 당시 파업에서 작가와 배우들은 TV에서 영화를 재상영할 때의 보상 문제를 놓고 방송국과 씨름을 벌였다. 영화사는 방영권을 제공하면서 사용료를 받았지만, 출연한 배우들은 그런 수익 배분에서 제외돼 있었다. 파업 결과 배우와 작가들은 영화 및 TV 프로그램의 재방송 시 수수료를 보장받았으며, 덧붙여 연금 등 복지 혜택도 강화됐다. 이때 배우조합의 위원장을 맡은 인물이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이 파업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지명도를 한껏 올린 레이건은 정계에 진출해 1967년부터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고, 이후 1981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이번 사태에서도 언급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는데 2000년엔 6개월 가깝게 광고 배우들이 파업을 벌였다. 마침 필자가 미국 광고회사의 미국 주재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라 그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봤다. 미국에서는 드라마나 극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광고에서 주로 활약하는 이들이 나뉘어 있는데, 광고 전문 배우들은 광고의 방영 횟수에 따라 추가 개런티를 받았다. 그런데 케이블에 더해 새롭게 출현한 인터넷에서 방영되는 광고에 대해서는 출연료 지급과 관련한 규정이 없었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쉽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도 그에 따른 수익 분배 시스템이나 법령 및 규정이 곧바로 마련되지는 않는다. 2000년 파업의 원인이 됐던 온라인 디지털이 이제 광고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때의 파업으로 업계에서는 나름 적정하다고 합의한 규정을 마련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스트리밍 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다시 갈등이 일어난다. 기술 발전과 함께 세상에 없던 매체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먼저 모두가 수긍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