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발레 화가, 그가 그린 건 가난한 소녀들의 고통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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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납량특집-미술편] 에드가 드가의 발레 그림하늘로 날아갈듯 뻗어낸 두 팔, 붉은 볼에 옅은 미소.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가 1878년 그린 '스타(L'étoile)'는 발레 그림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주인공이 화면 중심을 벗어나 있는 모습, 뒤로 젖힌 발레리나의 얼굴과 왼쪽 팔을 극단적으로 축소한 기법, 다른 무용수를 과감히 지워버린 구성 때문이다. 이 우아하고 아름답기만한 그림은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이다. 커튼 뒤에 서 있는 검정 옷의 얼굴 없는 남자가 보이는가.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드가는 평생 남긴 3000여 점의 그림 중 절반 이상을 발레 그림만 그렸다.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가 당시 귀족들이 사랑한 발레에 빠져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그의 발레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움보단 현실적인 장면이, 낭만적이기보다 비판적이고 서늘한 시선이 많다. 평생 혼자 지낸 드가는 여성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안고 살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사건은 이렇다. 아름다운 유럽계 혼혈이었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남동생, 즉 드가의 삼촌과 바람을 피우는 일이 벌어진 것.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를 못 본 척 했고, 어머니는 드가가 13세 때 요절하고 말았다. 이후 아버지는 폐인이 됐다. 드가는 이 사건들을 가슴에 묻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드가는 어머니를 평생 증오하고, 환멸했다. 죽을 때까지 여성을 멀리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을 갖게 됐다. 자산가의 장남이라 생계 걱정 없이 살던 드가는 마흔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사망으로 빚더미에 앉는다. 그림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그는 '팔리는 그림'을 고민했고, 그때부터 발레와 경마처럼 상류층 문화를 담은 그림을 그렸다. 오페라 극장과 발레 교습소에 살다시피 하며 '무희의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그린 발레리나들은 마냥 우아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당시 발레는 불우한 환경의 소녀들이 선택하는 직업이었다. 춤을 추기 위해 고통스럽게 하루 종일 훈련하고, 무리하게 관절을 비틀어 불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성공한 발레리나는 당시 교사 연봉의 8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자신의 운명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 이런 약점을 이용해 귀족과 자본가 남성들은 어린 발레리나들과 쾌락의 밤을 보내기 위해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찾아가 돈을 주고 유혹하는 일이 잦았다. 드가가 그린 '스타' 그림 속 검은 옷의 남자는 아마도 그런 속물 중 하나였을 테다. 어린 소녀들에겐 유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 테다. 이걸 알고 보면 발레리나의 목에 걸린 검정색 끈은 억압과 속박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그가 그린 많은 그림 속의 여성들은 대부분 눈빛이 공허하고 어딘가 뒤틀려 있다. 발레 그림의 다수는 발레의 화려한 모습 대신 그 안에 갇혀 발버둥쳐야 했던 어린 무용수들의 고통을 담고 있다. 얼굴은 대부분 흐릿하게 지워져 있거나 일그러진 표정이다. 드가는 "발레리나의 운명은 나와 비슷하다"고도 말하며 많은 시를 쓰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가졌던 여성에 대한 지독한 혐오, 어쩌면 드가는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소녀들 곁을 평생 맴돌며 그 트라우마를 연민과 사랑으로 승화했던 것은 아닐까.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