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건 많은데 볼 것은 없는 몰입형 쇼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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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몰입형 쇼는 관객에게 보다 몰입적이고 상호작용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예술 형식과 다른 상호작용적이고 경험적인 예술 형식이라 할 것이다.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예술 형식의 경우 관객은 일반적으로 거리를 두고 작품을 관찰 또는 감상한다.
그러나 몰입형 전시의 경우 관객은 일반적으로 파노라마처럼 화면의 중심 또는 이미지의 안에 위치하며 음향 등 다양한 요소와 접하고 때로는 전시물을 만지거나 스스로 조작하거나 그 사이를 통과하는 등의 경험을 한다. 몰입형 쇼는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하는데 이는 관객 개개인이 각자 전시물과 연결할 수 있는 상호작용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만지거나 한복판에 자리하면서 투사되는 이미지의 일부가 되어 마치 스스로가 참여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일체감을 갖게 해 단순히 거리를 두고 작품을 보는 종래의 관람방식보다는 더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관객을 경험의 중심에 두고 전시물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기존의 예술 형식보다 더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물론 이런 형식의 즐거움을 소비하는 기술의 미래는 매우 흥미롭고 개척해야 할 분야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의지의 문제로 보이는 것이 주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즉 주체의 의지가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많으면 보는 것은 줄어든다.보는 이 즉 관객은 살펴보고 따져보고 생각할 틈이 없이 환각적으로 투사되는 영상과 음악 속에 녹아들어 주체가 사라진다는 점은 몰입형 쇼의 역설이다. 양방향의 소통을 통한 공감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이입, 전달이란 점이 한계다.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나 진화된 게임의 세계, 메타버스(Metaverse) 등등을 통해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 새로운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이렇게 진화된 파노라마 기법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거나 예술과 더 깊은 수준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미래에 훨씬 더 놀랍고 인터랙티브 한 몰입형 예술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며, 전통적인 예술 형식이 결코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참여시킬 것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의 전제는 몰입형 전시가 예술성이 있느냐,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느냐와는 별개의 기술의 영역에서 인간의 경험치를 넓혀 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몰입’이 목표인 전시와 작품의 구성과 전개를 위해 관객과 소통을 중시하는 ‘몰입’이 방법이자 수단이 되는 몰입형 미술은 분명 다르다.
사실 몰입형 전시와 다른 몰입형 미술(Immersive Art)은 이미 1960년대부터 있었다.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1929~ )와 런던의 구스타프 메츠거(Gustav Metzger, 1926~2017) 같은 작가들은 몰입형 미술의 선구자라 할 것이다. “무한 거울방(Infinity Mirrored Room)”으로 유명한 쿠사마는 1965년 뉴욕의 카스텔란 갤러리(Castellane Gallery)에서 처음으로 선 보였다. 이후 지구상에 약 20개가 넘는 ‘인피니티 미러룸’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2023년 8월 28일까지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는 “무한 거울방-생명의 찬란함이 가득한(Infinity Mirrored Room–Filled with the Brilliance of Life)”를 볼 수 있다. 자동파괴예술(Auto-Destructive Art)과 예술파업(Art Strike)의 개념을 발전시킨 구스타프 메츠거는 1965년 사이키델릭한 조명 경험인 ‘액정 환경(Liquid Crystal Environment)’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열에 민감한 액체인 액정으로 채워진 유리 슬라이드에 빛을 투사해 슬라이드가 움직이면서 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화하는 설치작품이다. 1960년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미술운동인 ‘빛과 공간(Light and Space)’도 몰입형 미술의 한 형태다. 이 미술운동은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1898~1976)의 영향을 받은 옵아트, 미니멀리즘 및 기하학적 추상의 영향으로 빛과 부피, 규모와 같은 지각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유리, 네온, 형광등, 수지, 아크릴 같은 재료를 사용해 설치작업을 주로 해온 집단이다.
이들은 자연광의 흐름을 유도하거나 사물이나 건축물에 인공조명을 삽입하고 투명, 반투명 또는 반사체를 사용해 특정 조건 아래 빛과 기타 시청각도구를 활용해 관객의 경험을 유도한다. 이들은 엔지니어링 및 항공 우주 산업의 최신 기술을 작품에 반영해 감각적이고 빛이 가득한 물체를 개발했다.
대표적 작가로는 피터 알렉산더(Peter Alexander,1939 ~2020), 래리 벨(Larry Bell,1939~ ), 로버트 어윈(Robert Irwin,1928~ ), 등과 함께 론 쿠퍼(Ron Cooper,1943~ ), 존 맥클라켄(John McCracken,1934~2011), 부르스 나우만(Bruce Nauman,1941~ ), 에릭 오르(Eric Orr,1939~98),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 엘린 짐머만 (Elyn Zimmerman, 1945~ ) 그리고 이후 이들의 영향을 받은 캐스퍼 브린들(Casper Brindle,1968~ ), 울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1967~ ), 브리짓 코완즈(Brigitte Kowanz,1957~2022),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1958~ )등이 맥을 잇고 있다.
특히 ‘빛과 공간’의 미학을 전 세계적으로 퍼뜨린 터렐은 “우리는 빛을 먹고 피부를 통해 마신다”는 말로 이들의 미학을 정리했다. 백남준(1932~2006)의 1989년 작 <촛불하나> (MMK 미술관소장, 프랑크푸르트)나 오스트리아의 여성작가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 1962~ ) 등도 몰입형 비디오 설치작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또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 )가 2010년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작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란 회고전에서 관객 중 퍼포먼스에 참여한 방문객들은 736시간 30분에 걸쳐 작가의 맞은편에 앉아 작가와 눈을 맞추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몰입을 경험하도록 했다.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공간, 참여,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카르스텐 휠러(Carsten Holler, 1961~ )의 설치작업 자이언트 슬라이드 (Giant Slide)도 관람객의 참여가 필수이자 핵심이다.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열렸던 <카르스텐 휠러: 결정(Carsten Höller: Decision)>전은 관객을 실험적인 환경에 몰입시키는 상호 작용으로 전시회가 완성된다. 미끄럼틀 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스스로 어떤 경로를 택할지 결정할 수 있다. 이들은 알약을 먹고, 미지의 공간을 횡단하고, 미끄럼틀(또는 계단)을 따라 전시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전시가 곧 작품이 되는 몰입형 예술 경험의 결정적인 특징은 ‘참여’와 소통 즉 ‘함께하기’이다.
가장 몰입형 쇼 또는 몰입형 전시와 형식적으로 가장 흡사한 현대미술의 예로는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레스트(Dominique Gonzalez-Foerster,1965~ )가 2022년 4월 14일부터 9월 4일까지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연 <Alienarium 5>이란 전시이다. 작가는 수십 년간 관심을 갖고, 탐구해 온 태양계 밖의 심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성과물을 전시로 만들어 전시장이 외계인과 만남을 상상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는 특히 전시 자체를 매체로 다루면서 전시회에 참여하는 관객들이 이미지나 장면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의 개념을 탐구하는 공간적 발명과 조사를 병행했다.
또 미술 외에 음악, 문학, 영화, 건축 및 대중 문화의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는 관객을 대안적인 내러티브, 시간 및 심리적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계층화된 환경을 만들었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폴 B. 프레시아도(Paul B. Preciado,1970~ ), 음악가 줄리앙 페레즈(Julien Perez0, 조향사 바나베 피용(Barnabé Fillion)과 협력해 전시장을 장엄하면서도 비현실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버렸고 기술적으로 바이브아트(VIVE Arts)가 제작하고 파리에 본사를 둔 VR, AR 및 몰입형 경험을 개발하는 루시드 리얼리티(Lucid Realities)가 개발한 새로운 VR을 통해 외계인과의 만남을 그리고 몰입형 360도 콜라주로 우주 공간을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만든 메타파노라마(Metapanorama)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외계인을 하나로 묶어냈다. 따라서 이런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예에서 몰입형 전시나 몰입형 오락물의 예술적 근거를 설명하려 하지만 이 작품은 예술, 현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로 묶는 잠재력에 대한 아이디어의 구현이자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이런 가능한 존재를 꿈꾸며 항상 다른 인식을 갖는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특히 곤잘레스의 작품은 판타지를 통해 현재와 지금의 절망적인 인도주의와 자연환경에 대한 현실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책이나 영화를 막론하고 사변적인 소설은 곤잘레스의 작업에 있어 끊임없는 바탕이 되었다. 또 작품은 전시회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예술이 경험되는 방식을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요즘의 산업화 된 체험형 쇼 또는 몰입형 전시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는 곤잘레스의 전시와 형식은 같지만 호크니(David Hockney, 1937~ )의 런던 라이트 룸에서 열린 <David Hockney: Bigger & Closer (not smaller & further away)>(2023년 2월 22일~12월 3일)전과 크게 차이가 있다. 거대한 벽과 혁신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동원해 호크니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억을 사로잡거나 영혼을 감동시킬 진정한 예술은 없었다.”는 혹독한 비평을 만났다. 그의 몰입형 예술형식을 차용한 키치는 단순한 재치가 아니라 과도한 크레센도(Crescendo)였다. 관객은 거대한 프로젝션으로 1시간 동안 ‘몰입’해서 보는 것이 실제 미술관에서 그의 원작을 잠깐 보는 것보다 덜 감동적이었다. 원본이 없는 엔터테인먼트로서 예술의 상징은 다른 모든 몰입형 전시와 같은 방식으로 여운과 잔향 또는 울림이 없이 팝 콘서트처럼 소진되고 말았다.
결국 전시는 “순진무구한 그는 자신의 명성을 그의 예술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지도, 포착할 수도 없는 멍청한 오늘날의 유행에 빌려준 셈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더 작고 더 멀리 있는 망원경의 잘못된 끝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를 보는 것과 같다.”는 평을 얻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