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이토록 무서웠나…익숙한 공간이 주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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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0
평론가 오동진을 떨게 한
'진짜 진짜 무서운 영화'
넷플릭스 '힐 하우스의 유령'
복도 끝에 보이는 죽은 엄마
혹시 아빠가 죽인 건 아닐까
의심 속 넷째 딸이 죽는데…

(1) 힐 하우스의 유령

난 이 장면 이후 한동안 골목길을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어디선가 천우희가 스윽 나타날 것 같아서, 그 음산함이 나를 덮칠 것 같아서였다. 천우희에게 ‘네가 무서워졌다’고 카톡을 보냈을 정도다.
난 서구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끽해야 자기 혼자 혹은 집사나 일하는 사람까지 겨우 두셋이 사는 정도인데 언덕배기에 그토록 큰 저택에서 살아갈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방은 거의 위아래 층 10개에 가깝고 다이닝 룸이다 지하 창고다 뭐다 해서 비어 있는 공간이 한가득하고 거기마다 도통 음침하기가 이를 데 없다. 2층 침실에 누워 있을 때 아래층 어딘가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 섬뜩하지 않겠는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에서도 그런 저택 어딘가에 남자가 미친 아내를 죽기 전까지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마찬가지다. 모두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다. 사람은 너무 큰 집에서 살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은 그런 식의 대저택의 공포를 그리는 내용이다. 게다가 귀신 들린 집이다.‘힐 하우스의 유령’의 주요 인물은 아버지와 다섯 남매다. 5남매는 26년 전 힐 하우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고 큰아들 스티븐은 작가가 됐다. 최근에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기이한 일을 소재로 공포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첫째 딸 셜리는 장의사가 됐는데 그건 그녀가 어린 시절 유령을 하도 많이 봐서 시체 다루는 일을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둘째 딸 테오는 일종의 사이코메트리가 됐고 이 집안의 영매 역할을 한다. 셋째 딸 넬리와 둘째 아들 루크는 쌍둥이 남매다. 셋째 딸은 결국 이상한 일을 겪다가 죽었다. 루크는 약물중독자이자 소심한 성격의 남자가 됐다.
셋째 딸 넬리가 죽게 되는 그 이상한 일이 바로 이 10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사건이다. 넬리는 아이 때부터 침대 머리 위, 천장에서 내려다보거나 훅 다가서는 목 꺾인 여자의 환영을 본다. 넬리의 이 ‘정신적 혼란’은 엄마의 죽음 이후 더욱 심해진다. 엄마는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그런 엄마를 아빠가 죽였을 수 있다는 암시가 깔린다.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의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유령이 돼 집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나타난다. 복도 저 끝은 늘 어두컴컴하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을 가장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 심리적 트라우마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그린다. 진짜 무섭다.굳이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를 만든 마이클 플레니건은 내용을 두 원작에서 가져온 듯이 보인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유령의 집>과 셜리 잭슨의 동명소설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The Haunting of Hill House)>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의 원제가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다. 셜리 잭슨의 소설은 워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여서 1963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1999년에는 얀 드봉 감독이 ‘더 헌팅’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낡은 아파트 천장서 새는 물…건물위 물탱크 속엔 '으아악!'
소름끼치는 영화들
(2) 다크 워터
(3) 말리그넌트
(4) 멘
이건 과연 무서운 영화일까. 아니면 괴팍한 영화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서운 것이 진짜 무서운 법이다. 남자가 눈앞에서 뛰어내리는 걸 본 여자, 창가에 서 있다가 아까까지 싸우던 남편(남자친구)이 옥상에서 투신하면서, 그렇게 떨어져 가면서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걸 잊기 위해 영국의 시골 마을로 휴양차 내려간 여자는 거기서 한 남자의 육체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온 ‘남자들(men)’에게 쫓긴다. 남자들에 의해 묻지마 살인과 폭행이 빈번해지는 요즘, 이른바 남성주의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그린 기이한 작품이다.(5) 메모리즈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