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싫어하는 비 오는 날… 그 날이 반가운 어느 공예가

[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비 오는 날은 작업실 공기가 습하고 눅눅하다. 장마처럼 비가 길고 지난하게 지속될라치면, 습함을 넘어 사람의 몸속 깊숙이 축축함과 무거움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것 같다. 작업실 안에 있던 의자, 작업복, 도구 그 어느 것 할 것 없이 누르고 짜면 흠뻑 물 먹은 빨래 마냥 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다. 습기만으로도 참기 힘든 데 작업실 곳곳에 숨어있던 미생물들이 번식하며 비릿한 냄새까지 뿜으면, 그야말로 그 그런 날은 작업은커녕 숨을 쉬기도, 오래 머물기도 쉬운 게 아니다.

비 오는 날은 재료가 품은 물기도 마르지 않는다. 습기가 말라야 접착제를 바르면 떨어지지 않고 견고한 물건이 될 텐데. 손으로 상태를 가늠해볼 뿐 그런다고 머금은 습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표면에 바른 안료(옻칠, 유약 등). 틈새에 발라둔 접착제도 잘 마르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마냥 미룰 수는 없어 한여름이어도 불을 피우거나 바닥 난방을 돌려본다. 일단 급급하게나마 속전속결 작업실 습기를 제거해보려 하나, 습기에 열기까지 더해 후끈 달아오른 작업실에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어찌 쉬우랴. 그저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바쁜 마음을 참는 것이 고역이다.
곽혜영, See the Sound of Rain 39, 2019, 78×85.6cm. Porcelain with rainfall surface, 사진: 명스튜디오
날이 무거우니, 그 무게를 못 이겨 모든 일이 더디다. 기다리는 시간만 늘어간다. 마음 급하다고 적절한 때도 아닌 때 개입했다가는 오히려 앞서 한 것조차 모두 망치기 십상이다. 공예가가 경험과 감으로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러니 비가 많이 내릴수록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공예가의 마음이 허덕인다. 비가 오지 않아 논에 모를 심을 수 없고, 과한 비로 과실이 여물지 않아 절기를 넘기고도 수확하지 못하는 농부의 마음과 다를 게 무엇이랴.

농사를 짓든 재료의 상태에 따라 일을 하는 사는 자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자다. 속절없이 내리는 비가 야속한 때가 어디 하루 이틀뿐이랴 싶지만 모든 날이 같다면 그 또한 재미없고 지루한 날의 연속이다. 재료와 공정을 공예가의 의지와 계획대로 할 수 없다면, 날씨와 계절, 환경이 주는 시간의 제약, 변화에 따라 마음과 몸, 작업의 리듬을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이 내리는 비를, 차오르는 습기를, 무더운 더위를 완전히 작업실 바깥으로 밀어내고 막을 방도는 없으니 수긍하고 누구도 아닌 나의 마음을 다독이란 그 말이다.
곽혜영, See the Sound of Rain(detail), 2018. 사진: 명스튜디오
대부분 공예가의 작업실이 습습함과 축축함에 맞서 몸과 재료의 상태를 맞추기 급급한 우기(雨期)를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도예가 곽혜영의 작업실은 비 오는 날이 가장 반갑고 부산하다. 일반적으로 도예가들은 흙을 파고, 빚고, 틀에 눌러 찍어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 도예가들은 자신이 생각하는바 혹은 자신이 만든 것이 해야 할 용도를 머리에 떠올린 후, 흙을 주물러 최대한 자기가 원하는 바를 구현한다.도예가가 흙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던 간에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자연의 재료에 불어넣은 ‘인위(人爲)’다. 인간은 무엇을 만들려 하지만, 자연에 배속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 산과 바위, 물줄기는 모두 무위(無爲)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자연은 누군가 일으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고 수그러든다.

비 오는 것도, 바람 부는 것도, 태양이 뜨는 것도 자연이 스스로 때를 알아서 행한다. 지구상 사는 모든 존재 중에 오직 인간만이 비 오고 내리는 것을 조절하려 한다. 바람을 불거나 멈추게 하려 하며,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무시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산을 깎고 물길을 바꾼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연재해와 이상기후, 새로운 질병 창궐, 생명 소멸의 원인이 바로 우리 욕심이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비가 멈추면 썼던 우산을 거두면 되는 자연스러운 일을 왜 인간은 하지 못할까.

자연이 스스로 하는 바를 관찰하고 자연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이해와 분별이 생긴다. 이것이 한국문화에 오랫동안 스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세계다. 자연을 늘 인간의 의지 상위에 두는 겸허의 태도 때문에 한국 미술의 원형은 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자연을 닮으려 해왔다.자연을 최고의 예술 가치이자 원형으로 여겨 인위보다 무위를 항시 상위에 두는 태도는 한국 전통미술뿐 아니라 한국현대미술, 현대공예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자연법칙에 준해 무엇인가를 만든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것은 자연 스스로 한 것에 비해 언제나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예술로, 공예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곽혜영, See the Sound of Rain_011(detail), 2016. 사진: 명스튜디오
도예가는 곽혜영은 흙을 주물러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언젠가 눈과 비 오는 날을 대비해 미리 넓은 도판을 여럿 마련해둔다. 흙을 여러 번 두드리고 펴서 조직 치밀하고 넓은 흙판(土版)을 만든다. 그것은 눈 혹은 비가 때가 되면 스스로 그림 그릴 화면이 되고, 자연 현상의 무대, 시간과 흔적의 기록이 될 것이다. 내가 흙이라 빗물에 금세 무너지고 와해될까 염려하였더니, 작가는 “폭우에는 어쩔 도리 없지만, 왠만한 비에는 무너지지 않는다.” 말했다. 그녀는 맑은 날 흙판과 더불어 그 위에 흩뿌릴 산화물과 유약도 준비한다. 맑은 날에는 번조 효과와 계획에 맞게 그것들의 조합을 궁리하며 지낸다. 마음은 언제라도 스스로 내릴 눈과 비를 내내 기다리며.

비가 오면, 비의 양과 기세를 보아 얼른 도판 위에 준비해 두었던 안료, 산화물/염화물 등을 판 위에 뿌리고 도판을 밖에 내다 놓아야 한다. 빗물을 받아낼 흙판을 기울일 각도, 빗방울에 노출될 시간과 면적 등에 따라서 비의 흔적이 달라진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흙판 위에 내리면, 빗물의 강하 속도, 강수량, 강도에 따라 흙판에 다른 흔적이 남는다. 작가는 흙 위에 어떤 사건의 흔적이 남을까 기대하며 그것을 바라본다. 무엇을 만드는 일은 인위다. 그러나 곽혜영의 일은 인위보다 비라는 무위가 무엇을 흙판 위에 어떻게 남길지는 무위에 달려있다. 인간은 기다리고 대비하며 획득하고 채집하고 고온의 불로 굽는다. 그리고 흙, 물, 불-자연이 스스로 도모한 무위를 가마 속에서 꺼낸다.
곽혜영, See the Sound of Rain_2018. Porcelain with rainfall surface. 사진: 명스튜디오
작가와 알게 된 어느 날부터 나는 눈과 비 오는 날이면 작업실 안과 마당을 오가며 부산하게 움직이며 바쁠 그녀의 동선을 떠올려본다. 내게 눈과 비 오는 날은 밖에 나가기 싫은 날, 공친 날, 쉬는 날이겠지만, 그녀는 그간 준비한 것을 드디어 꺼내 맞이하고 설레는 그런 날이리라. 맑은 날에도 굳은 날을 위해 길고 철저한 준비로 바쁠 작가의 수고를 염려하곤 한다.

공예의 즐거움은 물질적인 무엇을 내 것으로 사유화하여 사용하고 바라보는 행위로는 온전하지 않다. 공예품을 곁에 두고 사용하고 감상할 때마다 나는 공예가들이 무엇을 만들기 위해 보냈을 시간, 절체절명의 결과를 얻기 위해 조바심쳤을 절치부심과 수고로움을 생각한다. 작가가 무엇을 만들기 위해 보냈을 시간과 생각, 그들의 감각과 시선이 향하는 곳을 꼼꼼히 살피며 찾으면서 내가 찾아낸 것과 나의 것을 천천히 맞춰본다. 작가의 것과 나의 것을 일체화하는 것, 생각을 같이하는 닮음과 공감의 과정이 공예의 실체요,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곽혜영, See the Sound of Rain_035.2019. 77×85cm. 사진: 명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