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 캠프 방불케 해"…예산 짜는 기재부 직원들 모인 '이 곳' [관가 포커스]

막바지 예산 작업 돌입한 기재부
업무 효율성 극대화 위해 반포로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5층 전경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예산실이 있는 5층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사무실엔 빈자리가 많았고, 전화 통화를 하거나 소규모 회의를 하는 직원 몇 명이 눈에 띌 뿐이었다. 사무실 입구엔 수거를 기다리는 마대 자루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안엔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 유관기관들의 내년도 예산 요구안이 담긴 책자가 가득했다. 방금 이사를 떠난 집의 풍경과 비슷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창 바쁠 시기인데 예산실 직원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현재 서울 반포동 서울지방조달청에 있는 기재부 서울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 지방조달청은 2008년 재정경제부와 통합되기 전까지 예산실의 전신인 기획예산처가 자리하던 곳이다. 막바지 예산 작업을 위해 이곳에 일종의 임시 사무실을 차린 것이다. 얼마 전까진 예산실 국·과장들이 주말마다 이곳에 모여 예산 작업을 했고, 지금은 대부분 직원이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예산실은 기재부가 과천에서 세종으로 이전한 2012년 이래 예산 철마다 반포에 모여 예산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다.직원들이 세종이 아닌 반포에 모이는 건 효율성 때문이다. 예산 심의 막바지엔 업무 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산실을 거친 한 고위 공무원은 "다른 국에 있다가 예산실에 가보니 여긴 정말 다음 날 아침까지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하더라"라며 "초기엔 오후 9시까지 일하다가 예산안 제출 기한이 다가올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진다"고 말했다. 이 시기엔 대통령실 보고와 당정 협의가 집중되기 때문에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예산실 직원들 입장에선 서울과 세종으로 오가며 길 위에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입구에 '예산실 청렴행동'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박상용 기자
반포로 가는 이유는 또 있다. 예산 철에는 부처, 지자체,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예산실을 찾아 설득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세종청사 5층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업무가 몰리는 막바지엔 외부인의 방문이 부담될 수 있다. 서울지방조달청은 외부인 출입을 사실상 차단하기 때문에 예산실 직원들 입장에선 '손님맞이'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예산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건 아니다. 예산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안을 직접 파악하고 있다. 현장 방문 뒤엔 다시 반포 사무소로 돌아와 심의 작업에 돌입한다.반포 사무소 분위기는 '총성 없는 전쟁터'의 '야전 캠프'를 방불케 한다는 전언이다. 직원들 모두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연일연야 눈코 뜰 새 없이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예산안에 각 부처와 전국 지자체, 기관, 단체 등의 한해 살림이 달려있다.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예산실은 공정한 원칙에 기반한 예산 배분을 위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예산 확보 경쟁은 여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가운데 기재부가 내년 예산안 편성 때 강도 높은 지출 구조 조정을 단행한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이달 중 예산 심의를 마무리 짓고 다음 달 1일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