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묵묵히 바라봐주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끔찍한 사고를 겪은 한 남자와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는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딘가 쓸쓸한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조용한 듯한 마을, 그러나 수면은 어지러이 일렁이고 있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홀로 지내고 있는 리(케이시 애플렉). 조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내고,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에게도 시큰둥하고, 술집에서 괜히 다른 남자와 주먹다짐을 하는 이 남자는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리는 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떠나왔었던 맨체스터로 향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맨체스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유명한 영국의 지명으로만 알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실재하는, 주민들이 거의 서로를 알고 지낼 정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이 마을의 풍경은 이 영화에서 배우의 얼굴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리'라는 이름의 사내를 따라가다보면 관객들은 불현듯 지금의 내용 전개와 맞지 않는 컷들이 침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영화의 독특한 편집 방식은 우리들이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다. 전형적인 방식의 플래시백이 아니라, 뜬금없는 순간에 과거의 기억들이 불현듯 침투한다.

우리는 많은 종류의 힐링 플롯을 알고 있다. 사연을 가진 상처 있는 인물이 사람과 만나 위로와 치유를 받게 되는 서사는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인 케네스 로너건은 입에 담기도 힘든 상처를 안게 된 인물을 섣부르게 위로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매듭짓거나, 지난 날의 상처를 봉합하는 메시지가 있는 명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독은 주고받는 말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도 있다고, 상처 그 자체를 인정하고 묵묵히 바라본다.

요즘 사건 사고 뉴스를 보다보면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 유독 많이 들려오는 듯하다.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심정 앞에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도 헤아리기 힘들다. 그럴 때 주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곁에서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일렁이는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그런 묵묵한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