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던진 물음…내 집을 다른 이에게 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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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하늘의 롱테이크
'콘크리트 유토피아' 8월 9일 개봉
유토피아의 역설을 조망
누가 문 밖에 늑대를 만들었나
'Who's Afraid of the Big Bad?'(누가 나쁜 늑대를 무서워할까요?)라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내부인과 외부인을 가르는 상징적인 문구와도 같은데, 이처럼 애니메이션에서도 '집'은 타인과 나의 영역을 구분 짓는 사적인 소유물이다. 누군가의 침입을 막고 동시에 보호해주는 테두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적 소유물이 공동 소유로 강제 전환된다면 어떨까.
'내 집'을 외부인에게 내줄 수 있을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개인의 소유물인 아파트가 공동의 피난처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다루고 있다. 아파트 내부 주민들은 외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한다. 나의 소중한 피난처가 침범받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안전마저 위협받을 것이라는 근원적 공포가 서려있다. 그 공포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 아기 돼지들이 늑대에 대해 느낀 것과 닮아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외부인이란 '늑대'나 다름 없기 떄문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도 왜 늑대가 왔는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도 '왜 재난이 일어났는가'는 중요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영화는 재난이 일어난 후 잿더미 가운데서 인간이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의 촘촘하게 설계한 도면처럼 인물들을 각자의 자리에 배치한다.
발단은 재난 이후 외부인이 빈집으로 오인하고 황궁아파트로 들어왔고, 원래 집주인과의 몸 다툼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던 것. 이와 함께 불길이 치솟자 어디선가 나타난 영탁(이병헌)은 주도적으로 불길을 잡는다. 중심이 필요했던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공무원인 민성(박서준)의 "리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기반 삼아 나름의 절차로 영탁을 주민 대표의 자리에 앉힌다.
아파트라는 공간의 특수성
아파트는 한국의 경제 발전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건축물이다. 아파트는 삭막한 도시 풍경을 만드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하는 동시에, 좁은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효율적 주택모델이기도 하다. 공동 주택으로서 아파트는 현대인에게 가장 밀접하면서 동시에 갈등적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는 공간이다. 한정된 땅 위에서 너도 나도 좋은 땅에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효율적 공간, 한국형 아파트가 뚜렷히 갖고 있는 특징이다.
왜 콘크리트 유토피아일까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콘크리트(concretus)는 라틴어로 '함께 자라는' 것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물, 모래, 자갈과 같은 재료를 혼합한 건축 자재다. 영화적으로는 다양한 인간상이 뒤얽힌 현실을 표현한다. 동시에 단단한 결집체를 뜻한다. 유토피아는 이상적 사회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유토피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아파트가 최후의 피난처이자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은 유토피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감독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 속에서 각 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위해 투쟁하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그 때문에 영탁 역의 배우 이병헌의 거무죽죽한 피부와 푸석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광기, 눈치를 보면서 동화되는 민성 역의 배우 박서준이 표현한 아이러니함과 굳은 신념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보여주는 금화 역의 배우 박보영.
이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민들을 휘어잡는 부녀회장 금애 역의 김선영, 단체의 의견이 아닌 자신의 소신이 중요한 도균 역의 김도윤, 사건의 반전을 가져다주는 소녀 혜원 역의 박지후까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대립은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시원한 쾌감을 보여주는 여름 텐트폴(일명 대작 영화) 시장에서 재난물을 그려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흩날리는 먼지에 목이 턱턱 막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러나 익숙하게 거주하던 공간이 뒤집히는 순간을 그리는 이 영화를 통해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늑대에게 돼지 대신 먹을 게 있었다면, 그들은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제한된 자원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참극을 영화는 그리고 있다. 만약 콘크리트 단단함 너머 '혼합체'라는 의미를 깨닫고 화합을 이룬다면 황궁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8월 9일 개봉. 러닝타임 130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