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칼럼] 디스인플레이션의 그늘…높아지는 채권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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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리더의 시각
임태섭 크레스트아시아자산운용 전략자문(성균관대 MBA 교수)

짜릿했던 “FOMO”의 추억

미국경제의 연착륙 기대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골디락스” 내러티브가 주식시장을 지배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은 “FOMO (Fear of missing out)”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2차전지를 중심으로 한 몇몇 개별종목에 집중된 패닉 매수세가 일어나기도 했다.현재 주식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내러티브는 너무나 낙관적이다. 정리해 보면, 우선, 연준의 525bp에 달하는 금리인상에도 미국 경제지표들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점차 하락하고 있어 더 이상의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다. 미국경제의 연착륙은 기정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파월의장이 밝혔듯이 심지어 그동안 경기침체를 예고하던 연준마저 경기침체를 더 이상 예고하지 않는다.

둘째, 작년 중반 이후 감소세를 거듭하던 우리나라 수출은 AI관련 투자의 폭발적 성장과 재고조정에 힘입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며 소비자신뢰지수도 다시 낙관적으로 돌아서며 내수도 회복세로 진입할 것이다.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주택시장 역시 정부의 규제완화와 대출증가에 힘입어 회복세가 완연해지고 있다.

결국,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이코노미스트들은 더 이상 경기침체를 언급하지 않으며 주식시장 전략가들은 올 들어 지속된 랠리에 하나둘씩 연말 주가지수 목표치를 올리고 있다. 시장의 내러티브는 새로운 Bull Market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제라도 리스크를 적극 감수하고 시장 랠리에 참여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거치게 되는 연착륙 낙관론

필자의 경험으로는 경기침체 직전까지도 이어지는 이런 시장의 낙관적 내러티브가 낯설지 않다.

얼마전 메릴린치의 전략가였던 데이비드 로젠버그도 비슷한 기억을 언급한다. 1990년 경기가 침체국면에 진입하기 바로 전 1989년 11월 클리브랜드 연준이 발행한 보고서의 제목은 “How Soft A Landing (경기가 얼마나 부드럽게 연착륙할까)”였다.

IT버블이 터지며 경기침체에 빠지게 되기 3개월 전인 2000년 12월 연준의 Market Insight에는 “Making A Soft Landing Even Softer (경기 연착륙을 더욱 부드럽게)”라는 칼럼이 게재됐다. 또한 베어스턴스의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그널이 나타나기 몇 달 전인 2007년 9월에는 달러스 연준이 “US economy on track for soft landing (미국경제는 연착륙 과정)”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연준의 첫번째 금리인상이 시작되면 시장의 반응은 경기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기업의 실적이 상승하고 있어 금리인상은 경제 펀더멘탈을 반영할 뿐 경기와 실적의 상승궤적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주식시장의 랠리는 계속된다는 낙관적 전망을 유지한다.

금리인상이 진행되고 경기가 완만한 하강세로 접어들면 투자자들은 대부분 연착륙을 예상한다. 이번 금리인상 사이클에서 금리인상 초기부터 주식시장이 경련을 일으킨 것은 금리인상의 속도가 80년대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말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자 시장은 곧 연착륙의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경기하강의 속도가 빨라지고 기업실적이 급락하면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연준은 금리인하 사이클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단계는 경기사이클에서 항상 거치는 과정이며 필자는 이번 사이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진단한다.

이번 경기사이클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이벤트에 의해 발생한 만큼 전과는 다르며 따라서 기존의 예측 모델들은 효용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기간구조를 가지는 채권시장의 장단기 금리차와 신용스프레드를 조합한 경기예측 모델의 유용성을 기간구조가 없어 단기적 지표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주식시장에 비해 휠씬 신뢰한다.

대표적으로 뉴욕 연준의 경기침체 예측모델을 살펴보면 경기침체 확률이 작년 11월에 12개월내에 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임계치 확률인 70%를 넘어선 이후 현재 97%에 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경기지표들이 현재의 추세를 유지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미국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은 경기사이클상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며 525bp에 달하는 금리인상이 연준의 지적대로 “long and variable lag (길고 다양한 시차)”를 두고 경제를 제어한다면 실제 경기하강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경제는 팬데믹의 발생에 대응한 5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유동성 투입과 4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추가 재정지출이 이전한 가계 잉여저축을 바탕으로 소비와 고용이 모두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엄청난 유동성은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 가격이 쉽게 하락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1년전 9%에 달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달 3% 후반으로 하락하였고 올봄 지방은행 파산사태는 연준이 금융여건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긴급 유동성을 투입하며 안정되었다. 이후 주식시장은 미국과 한국 대표 시장지수들이 모두 한단계 상승하였고 일부 주식들은 AI나 2차전지 테마를 중심으로 몇배의 수익률을 기록하였다. 경기침체를 대비하여 시장하락을 점쳤던 투자자들은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며 큰 손실을 냈고 비싼 밸류에이션을 이유로 매수를 주저하던 투자자들은 소외되었다. 그럼 이번 사이클은 이렇게 결론이 난 것일까?

미국 컨퍼런스보드의 경기동행지수는 2/4분기 전년대비 0.8% 상승하며 견조한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주식시장이 반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경기선행지수는 9.3% 하락하며 가파른 경기둔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기선행지수도 작년 하반기 바닥을 다지는 모습을 보이다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며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동행지수와 선행지수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지만 견고하게만 보이는 미국경제에 서서히 갈라지는 틈이 하나둘씩 보이고 있다. 고용시장의 불균형이 아주 느리게 조금씩 해소되고 있는 듯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현재 경제성장률이 1억7천만 수준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데 비해 고령화 등으로 1억6700만명 수준으로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고용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실업률의 증가없이 구인자수만 줄지는 않을 것이다.

고용시장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연준은 현재의 금리수준을 유지하며 매년 1조 달러 수준의 양적긴축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연준의 긴축이 오래 지속될수록 작은 틈은 더 커질 것이고 결국은 성장세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아직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이미 미국 경제에는 여기저기서 작지만 갈라진 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을 비롯한 대형 지방은행 몇개가 금리상승으로 인한 장기채권 투자손실로 파산하며 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기록되었으며 최근 10년물 국채금리가 다시 4.2%를 돌파하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타 은행들의 보유채권 평가손실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실물경제로 눈을 돌리면, “Bed, Bath & Beyond”등 부채 비율이 높은 소매업체들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잇달아 파산하였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주로 개별협상에 의해 파산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공식 데이터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분명한 것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채권평가손이 증가하며 이미 방어적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신용리스크마저 상승하고 있어 은행대출태도지수 (Senior Loan Officer Opinion Survey, SLOS)에서 보여지듯이 신용심사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하반기 대출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신용리스크는 본격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하이일드 채권시장을 비롯하여 주식시장은 이런 리스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채권투자

경기연착륙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주식시장에 비해 채권시장은 최근까지도 경기침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견조한 성장세와 완만히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연착륙 필요조건이 상당히 충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드디어 채권시장도 연착륙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10년물 국채금리를 비롯하여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일제히 오르고 있다. 10년물 금리는 다시 4%를 돌파하여 4.2%까지 상승하면서 작년 10월 고점에 이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는데 장기금리가 상승한 것은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하락하면서 금리인하 가능성도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기 인플레이션이 2.5% 수준에서 안정되고 실질금리가 0.5%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중립 명목 정책금리는 3% 수준으로 평가되고 과거 10년물과의 1.3%~1.5% 정도 스프레드를 반영하면 10년물 채권의 금리는 4.3%~4.5% 수준으로 평가된다. 최근 금리의 움직임은 극히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파장이다.

금리의 움직임과 주식 밸류에이션이 항상 일정한 1:1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식 리스크프리미엄은 1%까지 폭락하여 채권투자가 주식투자보다 상대적으로 휠씬 더 매력적인 상황이다. 이는 주식시장이 연착륙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반영하고 있으며 경기지표들의 변동에 따라 그만큼 실망의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의 이면

선진경제권의 인플레이션 하락은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기조를 완화하여 경기침체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에 거시경제적으로는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하락은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팬데믹 시기 공급망 붕괴와 상품수요 증가로 마진이 확대되었던 기업들의 수익률이 점차 팬데믹 이전으로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영업수익률은 살펴보면 지난 2년간 주요 업체들의 영업수익률이 팬데믹 이전의 두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생산이 정상화되고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주요 업체들은 이미 다시 가격할인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EV 부분에서는 선두주자인 테슬라가 대폭 가격할인에 나서며 시장점유률과 물량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가격경쟁이 심화되는 분위기이다. 아직 EV부분에서 규모의 경제와 수익률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기존 업체들은 영업수익률이 더욱 하락하게 될 것이다.

상품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많은 기업들의 수익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KOSPI는 올 1/4분기를 저점으로 기업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반영하고 있으나 매출증가 속도가 급락하고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실적의 반등이 실현될지 의문이다.

이미 2/4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률이 예상대로 대부분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반기 다시 한번 예상실적이 대폭 하향 조정되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연착륙과 실적 반등을 반영하고 있는 주식시장이 금리상승, 기업 수익률 및 실적하락을 반영하기 시작하면 멀티플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